뇌와 뇌가 만들어 내는 ‘박수 하모니’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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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뇌가 만들어 내는 ‘박수 하모니’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4.05.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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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모두가 같은 박자로 손뼉을 치는 때가 맞는 것 같은 현상을 ‘때맞음’이라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청중 모두가 같은 박자로 손뼉을 치는 때가 맞는 것 같은 현상을 ‘때맞음’이라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중 강연 때 필자가 간혹 하는 간단한 실험이다. 청중에게 손뼉을 계속 쳐달라고, 귀에 들리는 다른 사람의 박수 소리의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쳐달라고 부탁한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청중 모두가 같은 박자로 조율된 박수 소리를 함께 만들어 낸다. 손뼉을 치는 때가 맞는 것 같은 이런 현상을 ‘때맞음’이라 한다. 해당하는 영어 단어 ‘synchrony’도 시간(chronos)이 같아지는(syn) 현상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애독하는 온라인 매체 <퀀타매거진>(Quantamagazine)에 ‘The Social Benefits of Getting Our Brain in Sync’라는 제목의 마르타 자라스카(Marta Zaraska)의 훌륭한 글이 실렸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인 ‘뇌-사이 때맞음’(interbrain synchrony)에 대한 소개 기사이다. 전기적인 신호의 형태로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각자의 뇌가 다른 이의 뇌와 함께 만들어 내는 뇌파의 때맞음에 대한 여러 연구를 소개했다. 뇌-사이 때맞음은 ‘뇌-안 때맞음’(intrabrain snychrony)과 관련은 있어도 다른 현상이다. 뇌-안 때맞음은 한 사람의 머릿속 뇌 안에서 여러 뇌 부위나 여러 신경세포가 함께 때맞음되는 현상이고, 뇌-사이 때맞음은 서로 다른 뇌 사이의 때맞음이다.

서로 다른 방으로 나뉘어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는 쌍둥이의 뇌 전기 신호가 때맞음을 일으킨다는 오래전 논문도 있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이후 후속 연구로 반증된 주장이다. 이후의 여러 연구로 뇌-사이 때맞음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사 과학의 단골 주제인 텔레파시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전혀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뇌-사이 때맞음이 만들어진다. 협력과 소통이 전혀 없는 동떨어진 두 사람은 뇌-사이 때맞음을 보일 수 없다.

뇌-사이 때맞음에 대한 재밌는 연구가 많다. 실시간으로 각자의 연주를 조율해 멋진 음악을 함께 만들어 내는 두 연주자의 뇌도 때맞음을 보여주고, 함께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뇌파도 때맞음된다. 흥미롭게도, 수업에 열중한 학생과 강의자의 뇌도 때맞음을 보여준다. 뇌-사이 때맞음은 함께 협력해 그림 조각 퍼즐을 완성하려 애쓰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된다. 현재 뇌-사이 때맞음이 정말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데 많은 뇌과학자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뇌파가 보여주는 뇌-사이 때맞음 현상은 협력하고 소통하는 사람 사이에서 폭넓게 관찰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람들의 뇌파가 보여주는 뇌-사이 때맞음 현상은 협력하고 소통하는 사람 사이에서 폭넓게 관찰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뇌-사이 때맞음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해도, 이 현상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아직 연구할 것이 많다.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로 화면 속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도 뇌-사이 때맞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경우 뇌의 때맞음 정도는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교감하는 메커니즘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코로나 사태 당시 급격히 늘어났던 온라인 회의가 이후에는 점점 줄어 오프라인 회의로 대부분 되돌아가는 것을 본 필자의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직접 만나 눈빛, 손짓, 몸짓을 미묘하게 교환하며 나누는 대화를 온라인 화상 채팅이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서 사람 사이의 협력과 교감의 정도가 늘어날수록 뇌-사이 때맞음의 강도가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 자체가 때맞음되면 집단 내의 신뢰와 공감의 정도가 늘어난다는 것도 알려졌다. 둘이 함께 조율해 커플 댄스를 하면 상대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다는 연구, 단어들을 운율에 맞춰 함께 읽도록 하기만 해도 이후 집단 구성원 사이의 협력이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과학 연구가 아니어도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는 경험이다. 우리 조상이 함께 노동요를 부르면서 모내기를 한 이유, 군인들이 발맞춰 함께 행진하는 이유, 공유하고 싶은 가치가 담긴 구호를 여럿이 함께 외치는 이유, 중요한 행사 때 함께 애국가와 교가를 제창하는 이유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때맞음이 가진 사회적인 이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사람들의 뇌파가 보여주는 뇌-사이 때맞음 현상은 협력하고 소통하는 사람 사이에서 폭넓게 관찰된다. 그리고 사람들 행동의 때맞음은 집단의 결속을 강화해 더 강한 협력을 만들어 낸다는 분명한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 노래하면 함께 협력하고, 함께 협력하면 뇌-사이 때맞음이 일어난다. 이 결론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전히 궁금한 것이 남아있다. 바로, 뇌-사이 때맞음과 행동 때맞음 사이의 관계다. 뇌-사이 때맞음이 행동의 때맞음의 원인인지, 아니면 거꾸로 행동의 때맞음이 일어난 결과로 뇌-사이 때맞음이 일어나는 것인지는 재밌고 중요한 질문이다. 아직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부 실험에서 외부 자극을 통해 뇌-사이 때맞음을 만들어내면 이후 몸의 움직임의 때맞음의 정도가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지구에서의 인류의 성공 요인으로 많은 학자가 ‘대규모 협력’을 꼽는다. 오늘 소개한 기사에서는 인간의 협력을 만들어 내는 한 요인으로 행동의 때맞음과 뇌-사이 때맞음을 제안한다. 뇌-사이 때맞음이 인간의 대규모 협력의 생물학적 근원이라면, 우리는 말 그대로 이미 신경세포의 수준에서도 서로 연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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