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을 불태운 ‘참을 수 없는 매운맛’의 유혹(상) [오인경의 그·말·이]
상태바
삼양식품을 불태운 ‘참을 수 없는 매운맛’의 유혹(상)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5.20 0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품주로서는 보기 드문 ‘상한가’ 직행… 인기 제품 앞세워 ‘K-푸드 열풍’ 부채질
불닭볶음면. /사진=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사진=삼양식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이 서로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로 나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으로부터 또 다른 질문을 꺼내 든다. 묵직한 것이 긍정적인가 혹은 가벼운 것이 긍정적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지난주 금요일에 열린 주식시장에서도 양극단으로 향하는 극단적인 주가 움직임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HLB 계열사들의 무더기 하한가 직행과 삼양식품의 상한가 직행이 온종일 화제였다. 한쪽은 켜켜이 쌓인 하한가 잔량 때문에 한없이 무거워 보였고 다른 쪽은 쇄도하는 상한가 잔량 때문에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둔하디둔한 식품주로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상한가 직행’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불닭볶음면의 ‘참을 수 없는 매운맛에 대한 갈망’을 세상 사람들이 그동안 너무 가볍게 여겨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앞서 인용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문장들을 조금 더 읽어보면 이렇다.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매운맛을 갈망하는 성향도 이와 닮은 게 아닐까? 매우면 매울수록 우리의 입맛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지는 게 아닐까? 정말 매운 맛을 봐야 눈물이 줄줄 흐르고 인생의 참맛을 느끼는 게 아닐까?

지난달 온라인상에선 생일선물로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받고 감동의 눈물을 터뜨리는 소녀의 영상이 화제였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에 사는 어린 소녀였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어느새 1억회를 훌쩍 넘겼다고 한다.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홍보하는데 이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또 있을까 싶다.

증시에는 온갖 다양한 업종의 종목들이 상장되어 있지만 음식료 업종만큼 변화가 드문 업종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시가총액 비중도 작다. 그 때문에 음식료 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대개 기업분석 경력이 일천한 팀원급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식품주로 분류되는 종목들의 최근 10년간 시가총액 변화를 살펴보더라도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변화가 미미하다. 사람들의 입맛 또한 그만큼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이토록 변화라고는 찾기 어려운 식품업계에서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났다. 불닭볶음면을 앞세운 삼양식품의 인기몰이가 K-푸드 열풍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흔히 표현하는 대로 ‘망작에서 띵작으로’ 돌변한 케이스다. 지나치게 매운맛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한류 드라마 등 K-컬처의 인기 확산과 결합하면서 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소위 ‘Fire Noodle Challenge 영상’이 확산하면서 매운맛 라면에 대한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다. 다양한 소스를 개발하여 불닭볶음면 일변도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업체의 전략도 성공적이다.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1980년대부터 라면업계 부동의 절대강자였던 농심의 시가총액을 ‘단숨에’ 훌쩍 뛰어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불닭볶음면 출시 초창기였던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농심 시가총액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어느새 농심 시가총액의 1.4배에 이를 정도로 폭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도대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인기가 어느 정도이길래 농심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삼양식품의 최근 실적이 얼마만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삼양식품 매출의 95%는 라면과 스낵인데, 특이하게도 수출 비중이 70%가 넘는다. 해외시장에서의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는 반증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삼양식품의 수출 비중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74.1%이며, 2021년 3분기부터 60%를 넘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수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의 인기가 주력 시장 미국과 중국 등 특정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남아 등 매우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가파른 매출 증가세와 고환율 환경 덕분에 삼양식품의 수익성도 급격히 향상되는 모습이다. 올해 1분기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3%를 기록 중이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57.1% 늘어난 3857억원, 영업이익은 235.8% 늘어난 801억원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