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측정한 삼성의 지난해 기준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914억달러로 구글에 이어 세계 5위다. 아프리카 원주민도 아는 코카콜라가 580억달러로 8위, 돈 잘 번다는 테슬라가 499억달러이니 삼성의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단한 삼성의 브랜드 가치 대부분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에서 TV, 냉장고, 세탁기 등 삼성 가전(DX부문)이 61%를 차지하며, 특히 미국법인 매출은 DX 매출의 22.5%를 차지한다. 기업 매출은 그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을 대중이 접하는 시장 접점을 상징하므로 삼성 브랜드 이미지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 가전 매출이 형성한다고 할 수 있고, 미국 시장은 삼성전자에 중요하다. 참고로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반도체(DS부문)가 가전을 앞서지만, 업황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다.
그런데 삼성 브랜드 가치에 절대적인 삼성 가전이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조롱거리가 되는 듯해서 우려스럽다. 자료 1은 유튜브에 올라온 삼성전자의 전기 레인지 관련 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미국 어느 가정 주방에서 애완견이 전기 레인지에 달려들어 버튼이 작동하고 화재가 발생하는 영상인데, 내용은 삼성전자의 전기 레인지 화재 안전성을 조롱하고 있어 충격적이다.
미국 소비자 사이에서 이 영상이 회자하는 원인은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지난달 8일부터 시작한 자발적 리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부터 2013~2024년 생산한, 전면에 손잡이를 탑재한 30개 모델(약 112만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Customer Product Safety Commission)가 공시했다. 해당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3년 이후 사람과 반려동물에 의해 발생한 의도하지 않은 전면 손잡이 오작동을 300건 이상 보고받았다, 이 때문에 대략 250건의 화재 사고가 있었고, 이 화재 중 18건은 대규모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화재 사고로 약 40명의 부상자가 있었고 이들 가운데 8분의 1은 병원 치료가 필요했다. 특히 7건 화재는 반려동물이 사망했다.
기록에 따르면 전기 레인지 오작동 피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소비자 피해에 비해 리콜 내용은 경미하고, 응급 처치 성격의 보조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상당한 불편을 수반해 소비자가 만족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CPSC 공시에 따르면 리콜 방법은 자료 3과 같은 손잡이 자물쇠나 덮개를 문제의 전기 레인지에 설치하는 것이며, 문제 있는 전기 레인지 사용 소비자는 삼성전자에 직접 리콜을 신청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전자가 자발적 리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소비자가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 집단 소송은 집단적 소비자 피해 사고에 있어 일부 피해자가 제기하고 피해자 전부가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뉴욕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한 집단 소송은 삼성전자가 화재 발생 위험이 있는 손잡이(knob)가 설치된 전기 레인지를 판매했다는 혐의다. 관련 소식은 미국 집단 소송 정보 전문 매체 <injuryclaims>와 법률 뉴스 전문 매체 <Law360> 관련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성에 집단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인 원고는 뉴욕에 거주하는 소비자(Matthew Unger)이다. 그는 전기 레인지 기능을 자랑하는 삼성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프로모션 끝에 문제의 전기 레인지를 2017년 구매했으며, 이때 결함을 가진 제품을 삼성이 판매했다는 상법 위반 혐의를 문제로 제기했다. 또한 당시 결함이 있음을 알고도 삼성이 판매했으며, 이를 알고도 소비자에게 공시하지도 않은 혐의도 소송 내용에 포함했다.
아울러 원고는 지난달 삼성의 리콜이 있었음에도 회사나 관련자로부터 해당 내용에 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고, 단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알았다고 밝혔다. 리콜 조건은 소비자가 삼성에 직접 리콜을 요청해야 하므로, 리콜 개시 정보가 없으면 리콜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제품의 본질적 결함으로 인해 그가 구매한 전기 레인지 가치가 타사 정상 제품과 비교해 크게 훼손된 것도 소비자의 큰 부담이라고 소장에서 밝혔다. 삼성전자의 ‘명시담보 위반’(the breach of express warranty)과 ‘부당이득’(unjust enrichment), 뉴욕 상법 위반 등에 대한 이번 소송은 결함을 가진 삼성 전기 레인지 판매 관련 손해액과 이자, 법률 비용 등 손해 배상에 전국적 소비자 이익을 대표하는 소송이 될 것이라고 원고는 희망했다.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서는 삼성전자는 리콜에 그치지 않고 추가 손해 배상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삼성전자가 글로벌 판매망을 가졌으므로 집단 소송이 세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미국 비영리 소비자 단체 <consumer report>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6년 세탁기 280만대 리콜 이후에도 법률 소송이 있었고, 2019년에 해당 손해 배상 중재에 합의했다. 이때는 세탁기 상부가 세탁하는 동안 분리될수 수 있어 ‘폭발하는(exploding) 세탁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 세탁기는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이슈였는데, 사실 이번 화재 위험 전기 레인지는 2013년부터 문제가 있었으니, 삼성전자의 소비자 안전 불감증은 10년이 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쩌면 가습기에 독극물을 타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국내 산업 보호 풍토에서는 하찮은 개 목숨을 놓고 호들갑 떤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동물 보호에 높은 가치를 두는 미국 사회에서 ‘반려견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전제품’이라는 이미지는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시장이 중요한 만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삼성전자의 신중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