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208억 과징금 소송’ 현대중공업 유죄로 바뀌자 “사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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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208억 과징금 소송’ 현대중공업 유죄로 바뀌자 “사필귀정”
  • 서중달 기자
  • 승인 2024.10.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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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후려치기 등 하도급법 위반 증거 없애려 PC 등 조직적 은폐·인멸 확인
시민단체 “국회, 하도급법 적용 범위 대폭 확대 불법행위 재발 막아달라”
“208억 과징금 중 203억원 취소한 사법부 이번 판결 계기 각성해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HD현대중공업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앞두고 하도급법 위반 증거를 인멸하거나 이를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HD현대중공업 임직원이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자 피해하청업체와 시민사회단체가 “사필귀정”이라며 7일 일제히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또 1심 판단이 애초부터 사법 정의와 상식을 무시한 무리한 판결이었다며 계약서 미교부, 납품대금 후려치기 관행은 물론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증거까지 인멸하는 대기업의 악질적인 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2-2부(강희석·조은아·곽정한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당시 현대중공업 상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또 A씨의 교사에 의해 증거를 인멸한 B씨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8년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관련 직권조사 등에 대비해 관련 PC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2021년 재판에 넘겨졌었다. 앞서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사내 하도급업체 약 200곳에 선박·해양플랜트 제조작업 4만8000여건을 위탁하면서 하도급 대금 감축을 압박하고, 계약서를 작업 시작 후에야 발급했다며 2019년 과징금 208억원과 검찰 고발을 결정한 바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HD현대중공업은 선박 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일률적으로 단가 10%를 깎아줄 것을 요청,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렇게 49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단가 51억여원을 깎은 것으로 조사됐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공정위 현장조사가 진행되기 직전 자료를 은닉해 조사를 방해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PC 100여대와 HDD 273개를 교체하고 중요 자료는 사내망의 공유폴더와 외부 저장장치에 숨겼다. 공정위는 당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록을 확보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고, PC를 교체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도 확보했었다.

1심은 증거 인멸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관심사가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에 대한 대비로 A씨 등이 형사사건과 관련한 증거 인멸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피고인들이 당시 공정위가 하도급법 위반 등 혐의로 현대중공업을 검찰에 고발해 향후 형사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면서도 증거를 없앴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2018년 8월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공정위 조사에 앞서 주요 자료가 담긴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뒤 회사 엘리베이터로 반출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KBS 영상 캡처
2018년 8월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공정위 조사에 앞서 주요 자료가 담긴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뒤 회사 엘리베이터로 반출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KBS 영상 캡처

재판부는 “자료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인멸하며 하도급법 위반 행위를 충분히 규명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상당한 지장을 초래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피해업체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엇갈린 사법부의 행보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공정위와 검찰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증거인멸 범죄를 저지른 현대중공업과 임직원들이 제대로 된 사법부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사법부도 노골적인 재벌 대기업 봐주기 행보를 답습하지 말고 사회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또 “국회에서 이런 불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도급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거래 물품의 상세내용, 표준품셈·단가·각종지수, 하도급대금 산정기준과 산정내역 등 하도급 대금 산정을 위해 구체적인 정보를 계약서면에 명시해 하도급 업체에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도급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사건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으로 인해 공정위가 증거인멸 책임자 고발조치를 하지않아 하도급대책위와 시민사회가 직접 고발조치 및 고발요청권 행사를 통해 재판에 이르게 된 사안”이라며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각종 불공정행위 사건에서 공정위와 검찰이 협업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당시 하도급법 기준 역대 최대인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받자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면서 과징금이 4억3200만원으로 줄었다. 처분 사유는 모두 인정되지만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경우라며 일단 전부 취소하고 다시 과징금 액수를 정하라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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