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기초를 이루는 권력에 대항하는 모든 의지는 용기와 희생을 대가로 치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군사정권이든 거대 폭력조직이든 대규모 기업집단이든,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사실상 왕정의 시대를 겪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미국에서는 어떤 권력에 맞서든 상대적으로 덜 조직적이다.
폭력 메커니즘에 대응하면서도 개인화한 주체들이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국가의 농도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 대다수가 이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나라는 왕의 것도 사대부의 것도 아닌, 바로 획득 신분인 부르주아지와 백성들 자신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에반겔리온’(복음주의자)과 유대인 자본이 두 개의 기둥으로 세력을 형성한 가운데 신세계로 건너간 이민자 중에 부르주아지로 성장한 시민 세력이 더해져 삼각 모순 속에서 민주주의를 구성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부르주아지로 성공한 이민자의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피격 사건’ 전후 3가지 중요한 발언을 한다.
먼저 자신이 임명했지만, 갈등 관계에 있던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에게 금리를 내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파월은 당연히 7월 FOMC(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9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고, 이후 자본시장은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차티스트들의 경험을 실증하듯 ‘R의 공포’를 자아내며 폭락에 직면한다.
트럼프는 또한 엔화 가치의 인위적인 하락에 반대하며 그것이 일본 제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발언 이후 그동안 어마어마한 국가부채로 금리를 인상하지도 못하고, 옐런의 경고장을 받아 엔화의 대달러 환율의 폭등 속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미국채를 매각하여 환율방어에 나서지 못하고 있던 BOJ(일본은행)는 곧바로 금리 인상을 발표한다.
이것은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사들인 해외자산을 되파는 것)의 틈을 열어준 것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엔화의 폭락에 베팅하던 헤지펀드들의 포지션 변경을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그들은 엔화 대신 원화나 위안화를 노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계속 언급하며 이전의 연준 해체 발언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트럼프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연준(중앙은행)과 전 지구적 투기자본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읽힐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긴밀하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미국 대선 기간에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여 중동지역에서의 비대칭적인 핵 우위를 유지하고, 트럼프 당선 이후에 그 뒷수습을 한다는 시나리오에 손을 들겠지만, 미국 등의 유대인 자본가들은 트럼프의 압박에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카메라는 시작부터 흔들리며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화면 속에 배어들게 한다. 미 재무성의 수사관들은 1930년 대공황의 공포와 금주법 발동이라는 공권력의 희화화 국면 속에서, 알 카포네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테스>의 약혼자가 남미를 유랑하듯이 사람들은 위로받거나 희망을 찾기 위해 신대륙을 향했다. 브라이언 드 팔머는 영화 도입부에서 손님에게 가방을 찾아주려는 여자아이의 손에 들린 가방을 폭파하고 만다. 이로써 알 카포네 조직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으로 규정된다. 아이들은 바로 희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재무성 수사관 네스는 갓난아이가 실려있는 유모차를 손에서 놓고 마피아들에게 총알을 날린다. 계단을 내려가는 유모차는 정의의 상실감과 신의 축복 사이에서 총탄을 비켜 간다. 운명과 의지는 가끔 신에 대한 도전을 요구받는데, 도전의 근거가 위로인가 희망인가에 따라 결판나지만, 신은 대부분 위로에 대한 발원에는 냉정할 뿐이다.
브라이언 드 팔머의 감각적인 연출은 오히려 고전, 특히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상당 부분 의지하기 때문에 팔머 감독 드라마의 출연자들은 신경증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공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으로 그 결핍을 메운다.
냉전이 끝난 이후 그도 변하고 우리도 변했지만, 미국인에게 서유럽 혹은 나토의 쇠퇴와 동아시아의 번영 즉, 중국의 부상이라는 당혹스러운 상황은 다시 한번 2차대전 당시의 ‘공적 가치’를 깨울 필요가 생겨나게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은 일단 트럼프의 고립주의를 택할 것이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과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실크로드를 ‘상화’(相火)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렸다.
물론 트럼프가 푸틴을 충분히 설득한다면 중국은 고립될 것이고, 중국은 일본처럼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를 더하는 수준에서 지배력 확장을 멈출 것이다. 이 팽창과 응축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피’(加被)가 있었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고 우리는 오직 전쟁 상황을 ‘탈피’(脫皮)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모을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 안세영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서 그녀답게 용기 있는 발언을 했고, 나스닥은 다시 한번 3.4% 하락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란의 반격이 어디까지일까 숨죽이며 지켜봐야 한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