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대출 계속 이뤄졌는데도 우리금융 측 “현 회장·은행장 때 일 아냐” 변명
최근 tvN에서 주말드라마로 방영한 <감사합니다>를 꽤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횡령과 비리가 만연한 건설회사에 감사팀장 신차일(신하균 분)이 부임해 좌충우돌 감사를 펼치며 회사 임직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결국 사장의 비자금 조성 범죄까지 밝혀낸다는 줄거리입니다.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면서 현실과는 좀 괴리감도 있었지만, 드라마 속에서라도 악을 응징한 점은 무더위 속에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안겨줬습니다. 특히 “회사를 갉아먹는 쥐새끼들을 소탕하러 왔다”라고 공언한 감사팀장이 자신을 영입한 사장의 비리와 범죄를 밝혀내고, 세상의 ‘더 큰 쥐새끼’를 잡기 위해 떠나는 마지막회 장면은 ‘시즌2’를 기대하게 합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12일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정 대출과 관련,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이는 우리은행이 손 전 회장 친인척이 운영하는 법인 등에 최근 4년여간 350억원 상당의 부정 대출을 내어 준 사실을 적발했다는 금융감독원의 전날 발표에 따른 것입니다.
임 회장은 이날 오전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고 계신 고객님께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드린다”라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비롯한 지주사 및 우리은행 전 임원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임 회장은 부당한 지시와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의 처신, 허점이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 등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적으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저를 포함한 여기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며 “우리 모두가 철저히 반성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 은행장 역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며 “규정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One Strike Out) 제도를 통해 정도경영을 확고하게 다져 나가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조 행장은 이날 오전 은행 전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이 사건의 관련인에 대한 면직 등 인사 조치는 마쳤고, 관련 여신에 대한 회수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금융의 조치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최고위 임원들에 대한 문책이나 불이익은 없었고, 되레 “과거 전 (손태승) 회장 당시에 이뤄진 일로 현 (임종룡) 회장이나 (조병규) 은행장과는 무관하다”라고 강조한 해명자료만 발표했습니다. 번듯한 말로 비리의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숙인 임 회장의 사과에 전혀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대목입니다.
우리금융 측의 이런 해명도 꼼꼼하게 따져 보면 사실과 다릅니다. 손 전 회장과 관련한 대출 대부분이 2020년 4월~지난해 초 취급된 것으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해 1월까지 취급된 여신은 기존 거래업체에 대한 추가 여신이거나 담보부 여신 등이란 설명인데요. 임종룡 회장이 지난해 3월, 조병규 은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점을 감안하면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측 설명대로 하더라도 이번 대출 대부분이 실행된 이후 회장과 행장이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후 추가 대출 등에서 그룹과 은행의 대표로서 내부 통제 부실이 지속된 데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도 내부 직원들의 굵직한 횡령 사건으로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22년 본점 기업개선부 차장이 회삿돈 70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고, 올해 들어서도 지방 지점의 대리가 18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터져 금융당국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우리금융은 대형 사고가 이어질 때마다 번번이 내부 통제를 강화한다며 면피해 왔습니다. 이에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은 물론, 언론과 금융당국의 매서운 감시가 더해졌고 이번 사건도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 <감사합니다>의 신차일 팀장은 이번 우리금융 비리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임종룡 회장님, 그리고 조병규 은행장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