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별난 난관 극복의 역사가 있다. 현대사를 봐도 그렇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나 엄청난 규모의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모두 힘을 모아 큰 변화를 만들어 난관을 극복해 왔다. ‘국난 극복이 취미인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에 두는 과도한 집단주의가 개인의 행복감에 미치는 부작용은 문제이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 전체는 여러 재난에 대해 놀라운 회복력을 보일 때가 많았다.
인류 사회의 흥망성쇠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부분 연구는 주로 정성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인구가 급감한 자연적, 사회적 원인을 찾고 이후 다시 증가한 이유를 추정하는 방법을 개별 사회에 적용한 것이 대부분의 기존 연구라면, 얼마 전 출판된 한 연구(DOI:10.1038/s41586-024-07354-8)는 다른 방법을 이용했다. 한 사회가 아닌 여러 고대 사회를, 정성적이 아닌 통계학의 정량적인 방법을 적용해 체계적으로 살펴봤다.
이 연구에서는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집단을 포함해 전 세계 곳곳의 16개 고대 선사 사회의 3만년 동안의 정량적인 데이터를 이용했다. 지구의 대기에는 자연스러운 물리학의 메커니즘으로 보통의 탄소보다 중성자가 더 많은 탄소 동위원소가 생성되어서 대기 중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동위원소는 화학적인 성질이 같아서 질량수가 12인 훨씬 더 흔한 보통의 탄소 원자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서 동일한 생화학 반응에 이용된다. 생명을 이어가다가 죽음을 맞아 땅속에 매립된 이후에는 조금씩 일정한 비율로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오래전 과거의 유적지에서 가축의 사체, 곡식, 음식물 쓰레기 같은 유기물을 발굴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탄소 동위원소의 함량을 이용해서 이 유적지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만들어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바로 탄소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이다. 오늘 소개한 연구에서는 여러 유적지가 만들어진 연대를 바로 이 방법으로 추정한 데이터와 함께 얼마나 많은 탄소 화합물이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는지를 이용해 당시의 인구 규모를 추정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측정된 4만여개의 탄소 연대 측정 자료를 이용했다.
인간 사회는 가뭄과 기온 변화, 화산 폭발, 외부의 침입 등, 다양한 원인으로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다. 한 지역의 인구 집단 규모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래프로 그리면 여러 산꼭대기와 골짜기를 볼 수 있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장기간의 평균 인구 증가 커브를 기준으로 해서 움푹 깊게 팬 골짜기를 중심으로 한 인구 감소와 인구 증가의 상대적인 규모를 저항(resistance)과 회복(resilence)이라는 지표로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또한, 1000년당 재난의 발생 빈도(frequency)를 골짜기의 숫자와 지속 기간을 고려해 정의했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과거 인구 증감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았다. 특히 농업에 기반한 사회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한 충격이 커서 빠른 인구 감소를 보여주었다. 흥미롭게도 이들 농업 기반 사회는 재난 이후 인구 규모가 회복되는 것도 빨랐다고 논문은 보고한다. 16개 고대 사회 중에는 재난이 닥쳤을 때 인구 감소의 규모도 작고, 재난이 지나간 다음 빠른 회복을 보여준 곳도 있었다. 논문의 가장 중요한 결과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더 자주 재난을 맞이해 재난 발생 빈도(frequency)가 큰 사회일수록 이후의 재난에 저항하는 능력이 커지고(논문에서 정의한 저항의 값이 큼), 재난 이후 더 큰 회복력을 보여준다는(논문에서 정의한 회복의 값이 큼) 결론이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고대 사회로 한반도의 우리 선조들 사회를 지목한 것도 한국인인 나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더 자주 재난을 겪은 경험을 한 사회는 재난을 극복해 생존하는 혁신의 방법을 습득하고 이를 후손들에게 그 방법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역사학도 얼마든지 정량적이고 통계적인 방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재밌는 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