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노벨상 ‘Ig Nobel’의 진짜 가치 [김범준의 세상물정]
상태바
웃기는 노벨상 ‘Ig Nobel’의 진짜 가치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4.11.04 14: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 메달. /온라인커뮤니티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 메달. /온라인커뮤니티

올해 노벨상은 누가 받을지, 매년 수상자 발표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노벨상과 마찬가지로 매해 발표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에도 난 관심이 많다. 영어단어 ‘ignore’는 라틴어 ‘ignorare’에서 기원했다. 부정(not)을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 ‘in-’에 ‘알다(know)’의 뜻을 가진 라틴어 ‘gno-’가 결합한 단어라고 한다. 영어단어 ‘ignore’를 ‘알지 못하는 체하다’, 또는 ‘무시하다’로 우리가 옮기는 이유다. 이그노벨의 영어 철자 ‘Ig Nobel’을 노벨상이 아니(No Nobel)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무시할 수 있는’의 뜻을 가진 영어단어 ‘ignoble’과 철자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도 재밌다. 어쩌면 노벨상을 무시하는 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1991년 시작한 이그노벨상은 ‘재현할 수 없고, 재현해서도 안 되는 연구’에 수여한다는 유머러스한 취지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보다 ‘처음 들으면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지만, 곧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연구’에 수여한다는 취지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파인만이 시간의 화살에 대해 남긴 말 “영화를 거꾸로 틀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라면 웃을 수 없습니다.”도 떠오른다. 뉴턴의 운동 방정식과 같은 물리학의 모든 기본 법칙은 시간을 뒤집어도 똑같아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거꾸로 튼 영화를 알아보는 것인지는 심오한 질문이다. 이그노벨상은 ‘아니, 이런 것도 연구한다고?’하며 사람들이 처음 연구의 주제를 들으면 재밌고 황당하다고 생각해 웃음을 떠트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과학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연구들이 많다.

이그노벨상 수상식은 하버드 대학의 강당인 샌더스 홀에서 매년 열린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의 내용도 재밌지만 수상식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상자의 연설이 길어지면 한 아이가 그만하라고 외치는 전통, 사람들이 종이비행기를 연단으로 날리는 전통도 있다. 빗자루를 들고 연단 위 종이비행기를 치우는 역할을 맡은 사람도 매년 등장한다. 이그노벨상 상금은 10조 달러다. 어마어마한 액수 같지만, 사실 미국 달러가 아니라 짐바브웨 지폐로 준다. 우리나라의 원화로는 약 4천 원에 불과한 상금이라고 한다. 수상식 참가 여비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상금이 1만 원도 채 안 되는데도 많은 수상자가 자비로 수상식에 참가해 유머러스한 수상 연설을 한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등 이미 딱 정해진 분야에 속하는 연구에 수여되지만, 이그노벨상은 먼저 수상자를 선정하고는 수상 분야를 연구 주제를 고려해 이후에 정해서 매년 수상 분야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도 재밌다. 2024년 이그노벨 물리학상은 심지어 죽은 송어도 헤엄칠 수 있다는 연구에, 생리학상은 일부 포유류가 항문을 통해서도 호흡한다는 것을 알아낸 연구에 수여되었다. 다른 분야에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재밌는 몇 연구를 소개해 보자.

2024년 이그노벨 해부학상은 북반구와 남반구에 태어난 사람들이 머리카락 가마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보인 연구에 수여되었다. 논문 연구진은 먼저 쌍둥이의 경우에는 가마의 방향이 유의미하게 같다는 것을 보인다. 즉, 유전적인 요인이 가마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 분석했더니, 남반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서 반시계 방향의 가마가 더 자주 관찰된다는 데이터를 소개한다. 논문에서는 태어난 후의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설명은 치밀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이 재밌는 연구를 보고 처음 내게 떠오른 것은 물리학에서의 코리올리 힘이다. 자전하는 지구의 표면 근처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북반구에서는 운동 방향의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운동 방향의 왼쪽으로 코리올리 힘이 작용한다. 적도 근처에서 발생한 태풍이 우리나라로 북상해 다가오다가 오른쪽인 일본을 향해 주로 방향이 바뀌는 것이 바로 코리올리 힘의 효과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세면대의 물이 빠질 때 회전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재현되지 않는다. 세면대 모습의 작은 차이, 처음 물이 빠지기 시작할 때 우연히 결정된 처음의 작은 차이로 물의 회전 방향이 정해진다. 솔직한 내 생각으로는 남반구에서 반시계 방향의 가마가 더 자주 관찰되는 것을 코리올리의 힘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재밌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더 치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후속 연구로 다음 이그노벨상을 노려보시길.

2017년 이그노벨상 4번째 한국인 수상자인 한지원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 영상 캡처
2017년 이그노벨상 4번째 한국인 수상자인 한지원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 영상 캡처

통계학상은 무려 35만번 이상의 동전 던지기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를 보고한 연구에 수여되었다. 처음에 앞면을 위로 해서 던지면 결국 앞면이 나오고 뒷면을 위로 해서 던지면 뒷면이 나오는 것처럼, 던지기 직전의 동전 방향과 같은 방향의 최종결과를 얻을 확률이 50.8%라는 관찰 결과를 보고했다. 우리가 쉽게 짐작하는 50.0%와 다르다는 것을 보인 재밌는 연구다. 논문의 제목에는 공정한 동전(fair coin)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결국 50%가 아닌 50.8%의 결과가 얻어진 이유는 동전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동전을 던지는 사람의 특성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편향이 관찰되지 않는데, 앞면을 위로해서 던지면 결과도 앞면으로 나오는 경향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한다. 동전을 던질 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앞뒤가 같은 확률이 되도록 던진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나도 같은 면이 나올 확률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다. 동전 던지기로 다음에 설거지 당번 정할 때 꼭 이 논문 결과를 기억하시길.

인구학상 분야에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도 무척이나 재밌다. 지구상에는 100세를 넘는 고령자가 많이 생존해 살아가는 지역이 일부 있다. 인터뷰를 해보면 딱히 수명이 긴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음주와 흡연을 하면서도 오랜 수명을 누리는 일부 고령자의 사례도 간혹 있다. 이번 인구학상을 받은 연구 논문을 잠깐 뒤적여 살펴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보이는 그래프를 보았다. 바로 체계적인 출생 신고를 시작한 지역에서 갑자기 백세 이상 고령자가 감소한다는 결과가 담긴 그래프다. 공식적으로 출생 신고를 시작하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위험하므로, 긴 수명을 위해서는 출생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국가의 공식적인 인구 등록이 시작되면 사람들의 수명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들었던 재밌는 통계조사 결과도 떠오른다. 측정하지 않고 직접 물어서 답한 데이터를 모으면 사람들 키의 확률 분포에서 168, 169처럼 170에 가까운 값에서는 작은 골짜기가 보인다. 키가 168정도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키가 170이라고 키를 조금 높여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한편 만약 군인 징병의 기준을 170이상으로 설정하면 169에는 또 봉긋 솟은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 과거에 관찰된 결과다. 인구학상을 받은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세 인구가 특히 많아 장수마을로 소개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체계적인 출생 신고가 언제 시작되었는 지도 아울러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노벨상뿐 아니라 이그노벨상도 큰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다. 매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를 살펴보면서 많은 이들이 한번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이어서는 깊은 생각을 해보기를 권한다.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지면서 아울러 재미도 있는 인간의 활동이 과학이다.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느끼는 마음의 장벽을 크게 낮추는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이그노벨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