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를 영화관에서 보고 나온 것은 뜨거운 여름날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포도밭 원두막에서 거봉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영화에 대한 감정이입과 거리두기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과 그 헌법하에서 대선을 치르고 난 후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이었을망정 이른바 ‘87 체제’가 구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40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당시에는 직선제 개헌을 외치며 초여름 밤 최루가스 속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우스꽝스러운 체육관 간선제를 고수하는 자유민주주의 참칭 세력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제는 박근혜식 탄핵과 이승만식 하야를 요구하는 77% 국민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연속된 선거 패배로 인해 피해망상에 빠진 군 통수권자와 쿠데타를 입신의 기회로 여기는 일부 군인의 시대착오적인 과대망상에 맞서는 것이다.
<살바도르>는 레이건과 카터가 겨루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창 치러지는 와중에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성당학살 사건이 이야기의 축이 되지만, 현재 미국과 주변국이 형성하고 있는 갈등 구조와는 여전히 판박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패권 경쟁국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공화당의 고립주의 노선이 강화되는 국면 속에 불법 이민과 마약 문제가 주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또한 그대로이다.
중남미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시대 이래 누적돼 온 모순 속에 수많은 학살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주변부가 공간적 과잉에 노출되면서 겪는 비극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호칭으로만 감지되는 기괴한 측면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무속적 리얼리즘을 배경으로 한 계엄령의 선전포고 또한 초현실적으로 대의제 기구인 의회와 시민들을 향하여 총을 겨누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계엄령을 발포해도, 뜬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급히 어딘가로 몸을 피하는 마음들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은근히 계엄령이나 체포조, 삼청교육대 따위의 고어(gore)식 독재의 출현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식의 방관과 괴리감은,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의 칼끝이 부르주아지 자신들을 향해 올 때, 비로소 카르마의 수레바퀴 안에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는 넓고 깊은 불신의 강이 흐르고 있고 이 강가에는 성직자, 철학자, 작가, 기자, 국회, 대사(ambassador) 등의 뱃사공이 있어 양측을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던 파시즘이 이성을 도구화한 패권 다툼과 이념전쟁의 결과물이었다면, 합리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별했던 신화와도 손잡고 관념적인 의식이 구현되는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국회나 법원, 검찰, 언론 등의 기득권화에 대응해서 역설적으로 일론 머스크 같은 부르주아지의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담론참여가 필요했다.
이렇게 우리는 신화를 극복하고 도구화된 이성을 극복하고 의사소통 행위에 깃든 맹목성을 극복하고 하이퍼 리얼이 만들어내는 광범위한 폭력성을 극복하며 21세기를 맞이했지만, 이성 이전의 미신이나 왕조적 신분제 사회의 잔여물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기반 위에서는 언제든지 활성화할 수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자아(ego 혹은 self)가 주체(subject)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버마스의 전망대로 타자나 객체에 대한 이해가 기초하는 의사소통적 행위(Communicative Action)가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살바도르>에서처럼 정부군의 장교 하나가 마체테로 수박을 내리치며 겉은 파랗지만 속은 빨갱이라고 분노지수를 높이는 장면이나, 미국 국적의 수녀가 정부 측 민병대원에게 강간 후 암매장당하자, 그제야 미 대사가 엘살바도르 정부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는 장면 등은 인류의 에고가 영원히 욕망 안에 갇혀 있을 거라는 절망을 유지하게 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 개체수가 늘고 있는 종의 고유한 특징은 군집 생활을 하며 후대를 위해 자원을 비축한다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결국 욕망에 함몰된 서유럽이나 동아시아의 선진국들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인구감소라는 치명적 함정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니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탐욕 앞에 발끈해서 마치 자녀 없는 아비 혹은 오늘만 사는 망나니처럼 경거망동하는 것은 배우고 익히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PS: 계엄령 파동은 결국 신용경색과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자(헤지펀드)는 얼룩말 무리 전부가 아닌 맨 뒤에 뒤처진 얼룩말을 사냥한다. 그러니 탄핵이라는 익숙하지만, 지루한 과정(long term-process)을 거칠 것인지, 워터게이트로 사퇴한 닉슨의 경우처럼 짧은 과정(short termprocess)인 하야를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 위기는 불확실성이라는 궤를 같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