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헌법 위반으로 추정되는 계엄을 시행한 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탄핵 요구 시위와 이어진 국회 탄핵 의결로 국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사법 리스크가 에너지를 축적하며 한반도를 민주정치의 지진대로 만든 한 주였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 한 신흥 재벌도 정치 상황 못지않게 사법 리스크를 쌓으며 비등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삼표그룹’이다.
삼표그룹은 정도원 회장에서 정대현 부회장으로의 3세 승계를, 2005년 정 부회장 등판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삼표그룹 내 계열사 합병과 분할을 거쳐 현재의 지배구조를 가지게 됐다. 공정위가 공시하는 삼표그룹의 총수는 정도원 회장으로 지주회사인 삼표산업 지분을 25.9% 보유하고 있고, 그의 아들 정대현 부회장은 66.1% 지분으로 지배하고 있는 ‘에스피네이처’와 개인 보유 지분을 합쳐 삼표산업 지분 19.9%를 가진 실질적인 그룹 2대 주주이다. 즉, 현재의 삼표그룹 지배구조는 삼표산업과 에스피네이처를 기반으로 정도원 회장과 정대현 부회장이 공동 지배하는 3세 승계의 과도기적 구조라는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현 지배구조의 과거와 미래를 놓고 이만저만 논란거리가 아니다.
먼저 현 지배구조의 과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대현 부회장 3세 승계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는 곳은 바로 에스피네이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에스피네이처의 시원(始原)은 2007년 정도원 회장이 정대현을 비롯한 세 자녀에게 넘긴 개인 회사인 ‘대원’이었다. 이 회사는 2007년부터 성장 가도를 달리는데, 삼표그룹 물류를 책임지는 ‘삼표로지스틱스’와 합병하며, 본격적 삼표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몸집 불리기로 3세 승계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같은 과정이 일감 몰아주기라는 명확한 증거가 올해 8월 등장했다. 공정위가 삼표그룹의 ‘계열회사 간 부당 지원 행위’를 제재한 것이다. 공정위는 삼표산업이 에스피네이처를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합리적 이유 없이 원자재 ‘고가 구매’를 통해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시정명령 및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하고 삼표산업을 고발했다. 이로부터 넉 달이 지난 이번 달 9일 검찰은 삼표그룹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제47조 위반 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삼표그룹 총수 일가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3세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관련 사법 리스크가 ‘이제는 잊었겠지?’ 하는 순간 돌출하고 말았다. 특히 삼표그룹의 총수, 정도원 회장에게는 사법 리스크가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이러한 삼표그룹 지배구조의 미래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크다. 지난해 7월 삼표그룹은 기존 지주회사 삼표와 계열사 삼표산업 간에 지주 지위를 뒤바꾸는 역합병을 시행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현재의 지배구조가 앞으로 삼표그룹이 어떤 그림을 완성할 것인지 속이 뻔히 보인다는 평가다. 무리한 역합병을 추진한 결과는 한마디로 삼표그룹 3세 경영 승계가 향후 ‘자사주 마법’을 통해 완성될 것임을 암시한다. 즉, 역합병을 통해 과거 삼표가 보유하던 삼표산업 지분이 합병 후 삼표산업의 자사주로 변신했다는 점을 업계는 주목한다.
삼표그룹이 앞으로 전개할 자사주 방정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업 인적 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는 의결권이 살아난다. 그리고 자사주에 대한 유상증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지분을 더욱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현 지주회사 삼표산업이 다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하고, 현재 정대현 부회장과 에스피네이처가 소유한 삼표산업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 및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정대현 부회장은 정도원 회장 이상의 삼표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최종 보유할 수 있다. 간단히 회계적 조작으로 추가적인 투자나 상속세 부담 없이도 3세 경영 승계가 완성하는 마술 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벌의 자사주 마법의 폐단을 막기 위해 올해 6월 금융위원회는 자사주 관련 법규를 개정하는 입법예고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위 조치는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비상장법인으로 지배구조를 형성한 삼표그룹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자사주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경영 승계를 추진한다면 상속세를 회피한 재벌 세습을 비판하는 국민 여론이 들끓을 수 있으니 감독 당국이 지켜볼 일이다.
삼표그룹이 역합병 등 다소 과격한 3세 경영 승계를 추진한 배경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촉매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월 경기도 양주시 삼표 채석장에서 토사 붕괴로 근로자 3명이 매몰로 사망했다(이후에도 삼표그룹에서는 2명의 근로자 사망이 추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망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1년이 넘어선 지난해 3월 정도원 회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77세 고령에 사법 리스크가 닥친 이후 정도원 회장은 알다시피 3세 승계를 위한 전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고, 그 하나가 삼표와 삼표산업의 지주사 역합병이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그런 가운데 정도원 회장은 설상가상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사법 리스크를 하나 더 추가하고 말았다.
두 가지 상당히 심각한 법 위반으로 고령의 정도원 회장은 기로에 섰을 뿐 아니라, 지난해 처음 ‘재벌’로 등장한 삼표그룹의 기업 평판은 심각하게 손상될 전망이다. 여기에 예측대로 3세 승계 완성을 위해 삼표그룹이 자사주 마법을 연출한다면 삼표그룹 이미지는 더욱 깊고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추락할 수 있다. 또한 삼표그룹의 평판 악화는 예상치 않은 곳으로도 불똥이 튈 수 있다. 여론이 주목하는 곳은 바로 정의선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정도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경복고 동문이고, 정의선 회장은 정도원 회장의 장녀 정지선과 결혼했다. 즉 현대차그룹과 삼표그룹을 각각 대표하는 양 가문은 오랫동안 특별한 관계를 형성했고 인척 관계로 발전했다. 그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삼표그룹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의혹이 10년 이상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삼표그룹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필수 포트폴리오로 등장하곤 한다. 특히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 총수로 공정위 공시에 등장할 무렵에는 삼표그룹이 정도원 회장 장녀 정지선의 혼인 관계로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로 편입할 뻔하기도 했을 정도로 감독 당국도 두 그룹의 행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정도원 회장의 장녀 정지선씨가 삼표그룹 3세 승계 추진 과정에서 이익을 봤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삼표그룹은 정지선씨를 계열사의 기타 주주로 신고해 공정위에 ‘친족 독립경영’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공시에 따르면 에스피네이처 기타 주주(9.62%)는 정지선씨(에스피네이처의 총수 일가 지분은 100%)로 추정되며, 3세 승계를 배경으로 에스피네이처가 고속 성장한 과거 10년간 정지선씨는 73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일부 언론은 추정한다.
삼표그룹 사태에서 필자는 부성애가 강한 동물이 떠오른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은 ‘허들링’(huddling)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수컷 황제펭귄이 수개월 동안 알을 발등에 올려놓고 배로 알을 덮어 품으며 영하 40도 강추위를 막으려 절대로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가시고기는 수컷이 알을 품고 새끼가 부화하면 죽어 새끼의 먹이로 살을 내준다고 한다. 이들 동물의 그림이 정도원 회장의 인생 역정에 겹치는 것은, 필자가 관중이 찾는 ‘노마’(老馬)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