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이 만들어낸 유니버스 ‘삼체’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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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이 만들어낸 유니버스 ‘삼체’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8.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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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츠신의 ‘삼체 0: 구상섬전’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8편의 에피소드로 공개된 드라마 <삼체>(사진)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중국의 SF 작가 류츠신이 2007년부터 차례로 발표한 <삼체> 3부작이다. 소설 <삼체>에 담긴 작가의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과 방대한 세계관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작가는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해서 과학의 외연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한다. 실제 현실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내적 정합성과 개연성을 가진 새롭고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 낸다. <구상섬전>은 삼부작 <삼체>보다 이른 2004년의 작품이다. 이론물리학자 딩이가 구전(球電)연구 중 굉원자(宏原子)를 발견했다는 얘기가 <삼체>에 나온다. <삼체>에서 딩이가 연구한 구전이 바로 구상섬전이다. 구상섬전, 굉원자, 삼체인의 양성자 펼침에 관련된 <삼체> 세계관의 중요 부분을 이해하려면 이번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판된 소설 <삼체 0: 구상섬전>을 꼭 읽어보시길.

책의 제목인 구상섬전은 우리말로는 구형 번개, 영어로는 ball lightning이라고 불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이다. 소설에서 구상섬전은 유령 등불, 땅번개, 뇌구(thunder ball)로도 불린다. 평균 지름이 20cm 정도인 둥근 공 모습의 구상섬전은 번개가 치는 기상 조건에서 발생할 때가 많은데 노란색이나 빨간색에 가까운 색을 띠며 상당히 밝아서 대낮에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초속 몇 미터 정도의 속도로 대개는 수평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간혹 공중에 가만히 멈춰있거나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닫힌 문을 통과하는 것을 본 목격자도 있다. 간혹 폭발하며 사라지는데 이때 약간의 오존이나 황 냄새를 풍긴다. 구상섬전에 대한 인류의 관찰 기록은 부지기수고 많은 목격자가 묘사하는 구상섬전의 모습이 일관적이어서 현재 구상섬전이 실재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구상섬전이 과연 어떤 과학 메커니즘으로 발생하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어 있지 않다. 소설에서 작가는 소용돌이형 고온 플라스마, 혼합기체의 화학 반응, 미세 실리콘 입자의 연소 등의 주장을 소개한다. 2014년 출판된 중국 과학자의 논문은 구상섬전의 전자기파 방출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실리콘, 칼슘, 철, 질소, 그리고 산소의 방출선을 발견했다. 지면 근처에서 번개로 인해 발생한 실리콘 가스가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연소하는 것으로 구상섬전을 설명하는, 소설에도 소개된 이론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상섬전의 발생 원인에 대한 명확한 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직 아니다.

류츠신 작가는 1981년 구상섬전을 직접 목격했고 그 신비로움에 매혹되어서 이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구상섬전이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에서 출발해서 작가는 멋진 상상을 펼쳐간다. 특히 작가가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기묘한 양자 현상과 구상섬전을 연결하는 상상이 정말 기발하다. 작은 입자의 세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처음 형식화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25년의 일이다. 그해 6월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던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요양 차 북해의 작은 섬 헬골란트를 찾아간다. 6월의 어느 날 밤, 계산을 이어가던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체계를 드디어 완성하고 크나큰 희열에 들떠 밤을 꼬박 지새운다. 양자역학이 태어난 이 순간을 ‘헬골란트의 밤’이라고 부른다. 연구에 집중하며 긴 고민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투명한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올 때의 그 짜릿한 느낌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간혹 경험하는 일이다. 오래 고민하다 갑자기 작은 문제에 해답을 찾은 경험이 나도 몇 번 있다. 이 순간의 기쁨은 중독성이 있어 다시 또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고는 한다. 그리 대단치 않은 작은 깨달음이 내게 준 엄청난 기쁨을 생각하면, ‘헬골란트의 밤’의 순간 처음 양자역학의 체계를 완성했을 때 하이젠베르크가 느낀 환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삼체 0: 구상섬전>에서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의 서사를 씨줄로, 여러 기묘한 양자 현상을 날줄로 엮어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 낸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소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개념을 아래에 소개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독자가 소설을 꼭 직접 읽기를 바란다.

1. 계층 우주와 굉원자

<맨 인 블랙>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오리온이 차고 있는 목걸이 안에는 은하 하나가 통째로 들어있다. 이처럼 우리는 간혹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아주 작지만 우리 세상과 다르지 않은 세계가 가능하다고 상상하고는 한다. 내 인생 책 <코스모스>에도 칼 세이건이 상상한 우주의 계층 구조 얘기가 나온다. 우리가 가장 근본적인 입자로 생각하는 전자 안에도 그 안에 나름의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이다. 전자 안에 우주가 있고 그 우주에도 전자가 있고, 그 전자 안에도 우주가 있을 수 있다면, 엄청나게 방대한 우리 우주도 어쩌면 아주 아주 큰 입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삼체 0: 구상섬전>은 전자와 비슷하지만 아주 큰 전자인 굉(宏)전자, 원자핵보다 아주 큰 굉원자핵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굉원자핵 주위에 굉전자가 놓여서 만들어진 굉원자도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사는 우주에서 작은 원자가 핵융합해서 큰 원자가 된다면, 굉원자의 핵융합도 가능할까? 소설 후반에 그려진 상상이다.

2. 양자 상태와 양자 중첩

양자역학에는 파동함수라는 아주 중요한 수학적 개념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을 따르는 입자인 전자가 어떤 양자 상태에 있을 때, 이 양자 상태를 우리가 익숙한 삼차원 공간에 투영한 것이 파동함수여서 파동함수는 전자의 위치의 함수다. 전자의 파동함수가 주어지면 물리학자는 이를 이용해서 이 전자의 온갖 특성을 계산해 낼 수 있다. 전자가 이곳에 있을 확률과 저곳에 있을 확률도 파동함수로 알 수 있고, 파동함수를 적절한 방식으로 적분하면 전자가 어디에서 관찰될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운동량을 가질지, 그 통계적인 기댓값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양자 입자의 양자 상태로 기술된다. 양자 상태는 우리가 양자 입자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양자 상태가 곧 양자 입자라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입자의 양자 상태가 중첩되는 것을 허락한다. 양자 상태의 중첩이라고 하면 무척 어려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양자 중첩의 수학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만약 입자가 양자 상태 A와 양자 상태 B를 가질 수 있다면 두 상태를 단순히 더한 A+B가 양자 중첩이다. 독자도 들어봤을 슈뢰딩거 고양이의 양자 중첩 상태가 바로 이 이야기다. 고양이의 상태로 ‘삶’과 ‘죽음’이 가능하다면 고양이가 ‘삶’ + ‘죽음’이라는 중첩 상태에 있을 수 있는지가 슈뢰딩거 고양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삼체 0: 구상섬전>에서 작가는 구상섬전으로 죽은 생명은 양자 상태에 놓인다고 상상한다. 그렇다면 구상섬전으로 죽은 염소는 ‘죽은 염소’와 ‘살아있는 염소’의 중첩 상태에 있을 수 있다.

3. 관찰자 효과

양자역학의 표준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 상태가 관찰 혹은 측정에 의해서 가능한 여러 상태 중 하나의 상태로 갑자기 붕괴한다고 가정한다. 아주 넓게 펼쳐진 파동함수로 기술되는 양자 입자가 있다면 측정 전에 이 입자는 이곳에 있을 수도 아주 먼 저곳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입자를 바로 이곳에서 관찰하는 그 순간, 입자가 먼 저곳에 있을 가능성은 급격히 사라진다. 관찰로 인해 양자 상태가 붕괴하는 것을 관찰자 효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양자역학의 ‘관찰’을 의식 있는 인간의 의도적인 관찰로 생각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책에서 이론물리학자 딩이의 주장도 같다. 양자 상태가 관찰되는 것을 피하려면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카메라도 꺼야 한다. 관찰자 효과에 대한 소설의 내용이 정말 흥미롭다. 우리가 양자 입자를 발사하는 총을 만들어냈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가 발사된 양자 총알을 관찰하지 않는다면 양자 총알은 표적을 결정론적으로 맞힐 수 없다. 표적에 적중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고 어떤 카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양자 총알은 표적을 맞히지 못할 때가 많다. 만약 100개의 양자 총알을 발사했는데 100개 모두가 표적을 맞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당연히 누군가가 이 실험을 몰래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적국의 감시 장치가 관찰했을 수도, 어쩌면 외계인이 이 실험을 관찰했을 수도 있다. 관찰자 효과에 대한 작가의 이 얘기가 무척 재밌다.

4. 평행 세계와 양자 중첩

넓게 펼쳐져 있는 양자 상태가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바로 한 위치로 순간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표준 해석이다. 주류는 아니지만 ‘평행 세계’라고 불리는 다른 양자 해석도 있다. 바로 이 평행 세계 해석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은 영화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우리나라에서는 <에에올>로 줄여 부르는 영화다. 지구에 있을 수도, 달에 있을 수도 있어서 넓게 펼쳐진 파동함수로 기술되는 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표준 코펜하겐 해석은 내가 지구에서 전자를 관찰하는 순간 달에 전자가 존재할 확률은 급격히 0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한편 양자역학의 평행 세계, 혹은 다세계 해석은 이 과정에서 세계가 둘로 나뉜다고 말한다. 이렇게 갈라진 두 세계 중 하나는 전자가 지구에서 관찰된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전자가 달에서 관찰된 세계에 해당한다. 평형 세계 해석은 파동함수의 순간적 붕괴라는 도대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매 순간 수없이 많은 세계로 끊임없는 분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에에올>의 상상이 바로 이 이야기다. 주인공이 무술 고수가 된 우주, 소시지 손가락을 가진 우주 등, 온갖 우주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설정이 바로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이다. <삼체 0: 구상섬전>은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가 양자 중첩의 상태로 가능하다고 상상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양자 중첩이 평행 세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평행 세계의 수많은 세계는 서로 완벽히 단절되어 있다. 위험한 실험으로 염소가 죽은 세계가 있고, 염소가 여전히 살아있는 세계가 있지만, 우리는 둘 중 한 세계에서 죽은 염소나 산 염소를 볼 뿐, 염소의 삶과 죽음이 동시에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소설에 담긴 세계는 평행 세계가 아니라, 딱 하나의 세계이며 삶과 죽음이 중첩 상태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내용과 해석에 기반한 상상으로 소설 전체를 구상해 낸 작가가 정말 경탄스럽다. 양자역학이 태어난 지 딱 100년째가 되는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이 소설이 올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판된 것을 환영한다. 재밌게 멋진 소설도 읽고, 양자역학의 여러 기묘한 현상에 대한 이해도 늘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멋진 소설이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현실에서 옳은 것으로 판명된 과학의 내용과 SF 소설에서 그리는 과학의 내용 사이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소설에서 용인되는 차이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2.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두 상태의 중첩이 거시적인 세상에서도 가능하다는 재밌는 상상이 소설 여기저기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중첩 상태는 양자역학의 평행 우주와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가요?

3.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은 관찰 혹은 측정의 순간 양자 상태가 갑자기 붕괴한다고 설명합니다. 양자 상태를 측정해 눈금으로 보여주는 측정 장치, 그리고 이 장치의 눈금을 읽는 인간이 있을 때, 측정은 어느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4. 만약 한 인간이 양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사람은 스스로를 측정해 자신의 양자 상태를 붕괴시키며 계속 같은 상태에 머물 수 있을까요?

5. 넓게 펼쳐진 고에너지 양자 상태를 이용해서 특정한 대상에만 선택적으로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양자 무기가 가능할까요?

6. 원자의 내부는 사실 텅텅 비어 있어요. 원자 하나의 내부에도 커다란 은하가 들어 있을 수 있을까요?

7. 과학의 상상과 문학의 상상은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인가요?

8. 과학자로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동의할 수 없는 과학의 내용이 간혹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왜 저는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일까요? SF 소설이 그리는 세계가 개연성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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