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경계선에 선 트럼프는 ‘쇼당의 하수’가 될까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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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경계선에 선 트럼프는 ‘쇼당의 하수’가 될까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9.0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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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리언: 어스’, 경계선 위에 서서
‘에이리언: 어스’의 한 장면.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에이리언: 어스’의 한 장면.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국가나 기업이 성장할 때는 대부분 혹은 당연히 밖으로 뻗어 나가면서 부딪히는 문제, 개척자 정신의 시험대나 외부의 낯선 위협들과 조우 등이 영화나 문학 등에서 주된 소재가 된다.

이때에는 경계선의 문제가 비교적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반대 방향에서는 경계선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떠오른다. 잠재된 힘이 외부로 분출되거나 방사되지 않고 내부로 투사되면서, 동종 시장이나 장르에서 기술혁신의 창발로 대체재가 만들어지거나 신매체가 등장함으로써 이른바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 즉, 경계선에서 다툼의 밀도는 끝없이 높아진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작화가 실사에 가까워질수록 불편하고 거북해지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가솔린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에서 거부반응처럼 두드러지는 ‘캐즘’(Chasm) 등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산업이나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사회화 과정에서도 피터팬 신드롬이나 경계선 지능 기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것도 이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에이리언: 어스>에서 웬디가 이끄는, 미숙한 아이들의 의식이 강화된 성인 몸에 이식된 합성인간들은 모두 경계인(어른과 아이, 사람과 기계 사이에서)으로서 혼동스러워 한다.

국가 단위의 역사에서는 외세의 침범 시기에 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무리가 나타나는데 이들 역시 정체성이 굴절되는 경계성 인격(borderline personality)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위와 같이 경계선 위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되거나 위험인자로 간주하지만, 그들이 주체 혹은 타자, 아니면 대상화된 타자로서 각기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은 극복과 좌절의 변증법적 범주로써 사회의 또 다른 운동 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에이리언: 어스>에서 진정한 대립축은 인간과 에이리언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인간 사이에서 형성된다. 기계인간은 로봇,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등등 자유의지를 탑재하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에 선 모든 형태의 하이브리드를 말한다. <에이리언: 어스>에서 하이브리드, 합성인간들은 인간과 로봇 사이에 놓인 언캐니 밸리의 그 어색한 낯섦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류의 근원적 공포는 “동물로서의 인간은 처음에는 단지 먹잇감에 불과했다”라는 커시의 말속에 담겨 있다. 커시와 더불어 문제적 사이보그 머로 역시 인간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배신의 장벽이 무너진 피식자로 인식하고 “기계는 언제 기계가 아니지?”라며 하이브리드를 꼬드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쉽게 재생되지 않는 약하디약한 인류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불안정한 현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각국의 중앙은행과 은행시스템을 위협하는 존재는 지금까지는 헤지 펀드 정도였다. 이제는 거기에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계가 단순히 인간의 도구 수준에 머물렀다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겠지만, 기계가 자유의지를 갖게 되는 순간 인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종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미국 국채 시장의 추가적인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코인 시장이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난망이다. 통화정책의 주도권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서 코인 시장으로 넘어가게 되는 아포칼립스가 펼쳐질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층위를 달리해서 트럼프가 ‘트리핀 딜레마’를 관세를 통해서 의미 있게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 또한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다. ‘트리핀 딜레마’란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가 1960년에 출간한 <금과 달러 위기>에서 제시한 기축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가 직면하는 모순을 뜻한다. 미국 달러와 같은 기축 통화가 국가 간 거래에 원활하게 쓰이기 위해 많이 풀리면 기축 통화 발행국의 적자가 쌓이고, 반대로 기축 통화 발행국이 무역 흑자를 보면 돈이 덜 풀려 국제 결제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기축통화국의 숙명 같은 무역적자를 지난 수십년간, 전 지구적 공급망을 구축해서 인플레이션 없이도 소비수준을 높게 유지하면서 버텨왔지만, 이제 그 모든 효율성을 트럼프 본인의 손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에이리언: 어스>에서 프로디지의 피터팬 보이 카발리어가 신체의 노쇠라는 변화를 겪어보지 못함으로써 호기심에 대한 관망{노자식 표현으로 ‘불출호 이지천하’(不出戶 以知天下, 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의 대세는 알 수가 있다)}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트럼프는 오히려 임기와 고령이라는 제약조건 때문에 성급하게 상충하는 변수들을 한꺼번에 이터레이션(iteration)하고 있다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트럼프가 아무리 ‘쇼당의 명수’(cf. 하메네이와 네타냐후에게 걸었듯이, 푸틴과 젤렌스키에게 걸었듯이)라고 하지만, 그 재주는 대부분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지정학적 갈등 국면에서만 유효하다.

경제적 과제는 미국 기업의 산업 경쟁력이, 서비스업을 제외한 제조업 등 분야에서 노동자의 생산성이, 국채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 못하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계선 위에 놓인 미 국채에 대한 수요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배력에 관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내부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먼저 꺼내 들었지만 머지 않아 결국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스콧 베센트가 재무부 장관임을 떠올리면 그의 역할이 궁극적으로 서유럽이나 동북아시아에서 희생양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브릭스(BRICS)에서 아무리 의미 없는 헛발질을 해도 미 국채를 안전자산이라고 여기고 사들이는 수요의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머나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외계인과의 의미 없는 사투에 불과했던 에이리언 시리즈가 비로소 인간의 문제로 착지하게 됐다는 점에서 <에이리언: 어스>는 <에이리언 2.>의 뒤를 바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에이리언을 생물학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프로디지와 웨이랜드 유타니 간의 대결이 치열해지겠지만, 커시와 모로 같이 이미 인간의 허약함을 간파하고 있는 기계인간들은 오히려 에이리언을 내세워 인간과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길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80년이 채 되지 않아 지구의 인구수는 25억에서 80억이 되었다. 그사이에 증가한 인구는 대부분 남반구, 글로벌 사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인류가 다시 한번 야만적인 전쟁을 벌일 것인지,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선진국들이 그 후에도 여전히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을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제노모프가 핵무기일지, AI의 농간일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不出戶 以知天下’의 범주 안에 들어왔음이 느껴지는, 연착된 세기말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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