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공이 아닌, 또 다른 ‘우주’가 있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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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인공이 아닌, 또 다른 ‘우주’가 있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12.0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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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유니버스의 영어 단어 universe는 하나 또는 유일함을 뜻하는 접두어 ‘uni-’로 시작한다.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유니버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총체를 뜻한다. 과학에서 의미 있는 유니버스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유니버스 하나일 수밖에 없다. 유니버스 밖에 무엇이 있다고 한들, 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유니버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유니버스가 아닌 다른 유니버스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수없이 많은 다른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가 우리 우주와 함께 이 순간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갈 수 없다고 해서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수많은 평행 우주가 모인 전체를 다중우주(multiverse)라고 한다. 오늘 소개할 책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의 중심 주제가 바로 다중우주다. 책에는 많은 물리학자가 동의하는 내용, 어느 정도의 물리학자는 동의해도 다른 더 많은 물리학자는 고개를 갸웃하는 내용, 그리고 아마도 저자를 포함한 극소수 물리학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물리학자가 고개를 저으며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해서 딱 잘라 잘못된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가 펼치는 용감한 주장의 매력이다. 책에는 모두 4종류의 다중우주에 대한 저자의 상상이 담겨있다. 이론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가 책에서 펼치는 상상력이 엄청나다.

갈릴레오는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인 책이라 했고, 유진 위그너는 자연과학에서 볼 수 있는 수학의 엄청난 효율성 자체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남겼다. 이 작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티끌처럼 사소한 인간이 알아낸 수학이 도대체 어떻게 이 큰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의 설명 불가능성이 바로 위그너가 한 얘기다. 독자도 한번 생각해 보라. 아니, 도대체 왜, 우주와 자연이 인간의 수학으로 기술되어야 할까? 자연이라는 책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적혀야 할 어떤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맥스 테그마크의 답은 도발적이다. 바로 우주 자체가 수학적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입자 자체가 수학적 대상이며, 우주의 시공간 자체도 수학적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실체는 궁극적으로는 우주를 구성하는 수학적 구조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독특하고 정교한 수학적 매듭이며 스스로를 자각하는 거대한 수학적 대상의 일부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를 구성하는 것이 수학이니 나도 수학이다.

인간이 알아낸 공간의 규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팽창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막대기만으로 지구의 크기를 쟀고, 아리스타르코스는 월식 때 달에 비친 지구 그림자와 지구에서 달을 볼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각도인 시직경을 이용해 달까지의 거리도 알아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이 정확히 반달일 때 태양-지구-달의 각도를 재서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냈고 태양까지의 거리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계산해 낼 수 있었다. 현대까지 이어진 과학의 발달로 지구에 붙박여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별까지의 거리뿐 아니라 우리은하 밖에 있는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도 추정해 낼 수 있었다. 과거 선조 들이 생각했던 우주보다 현대 과학이 알려주는 우주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게다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어서, 관측이 가능한 우주 밖에도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자 다수의 생각이다.

우주의 시간은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이 진행하는 시간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를 정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나이를 추정할 때 이용되는 것이 바로 허블의 법칙이다. 허블은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규칙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을 이용해 알아냈고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는 도플러 효과로 측정했다. 기차가 우리를 지나쳐 멀어지면 기차의 경적이 낮은 음으로 들리는 것이 소리의 도플러 효과다. 마찬가지로,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는 은하의 전자기파 스펙트럼은 파장이 긴 쪽으로 옮겨지는 데 이를 이용하면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를 얻을 수 있다. 허블은 더 먼 은하가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어서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 v가 은하까지의 거리 d에 비례해서 v=H·d의 수식을 만족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식에 등장하는 H가 바로 허블 상수다. 300km의 거리를 시속 100km의 자동차로 달릴 때 걸리는 시간은 거리 300을 속도 100으로 나눈 3시간이다. 마찬가지다. 허블의 법칙을 d/v=1/H의 꼴로 적고 허블 상수 H가 우주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일정했다고 가정하면 1/H이 바로 우주의 나이에 해당하는 시간이 된다. 현대의 추정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년이다.

우주에서 빛이 가장 빠르니 탄생한 지 138억년이 지난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리의 한계가 138억광년일까? 그렇지 않다. 우주의 공간 자체가 그동안 팽창했기 때문이다. 중국 무협 소설에 나오는 땅을 줄여 빠르게 이동하는 상상의 기술 축지법을 떠올려 보라. 2000리 거리를 축지법으로 오늘 아침 절반으로 줄였다가 내일 아침 2000리로 다시 늘리면, 하루에 1000리를 달리는 천리마는 하루에 2000리를 달릴 수 있다.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300억광년인 먼 천체도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천체에서 빛이 출발했을 때의 우주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는 유한해서 더 먼 천체를 볼수록 더 오래전 모습이 보인다. 저자는 이 상황을 여러 줄로 의자가 놓인 강의실에 비유한다. 강단에서 가장 가까운 첫 줄에는 스무 살 대학생이 보인다. 강의실의 뒤쪽으로 시선을 조금씩 옮기면 나이가 어린 청소년이 보이고 그보다 뒤에는 어린 아기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다음 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앞줄의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주 먼 우주를 보면 우주의 오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빅뱅이 일어나고 한동안은 우주의 온도가 상당히 높았다. 높은 온도로 전하를 가진 입자 들이 안정적인 원자를 이루지 못하고 공간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플라스마 상태였다. 아주 먼 우주를 보면 우리는 플라스마의 장벽을 보게 된다. 물론 우주가 팽창하면서 플라스마 장벽은 원래의 밝기가 줄고 파장도 길어져서 현재 관찰하면 약 2mm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를 보게 된다. 우주 어느 방향을 봐도 관찰되는 이 전자기파가 바로 우주 배경 복사다.

우리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것은 이제 현대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도대체 빅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현대의 과학자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한때 태양의 중심부보다 더 뜨거웠으며 1초에 크기가 2배로 늘어날 정도로 빠르게 팽창했다는 것뿐이다. 이보다 더 이른 시간에 빅뱅 특이점이 존재해서 우주의 밀도가 무한대였는지, 우주에 과연 시작이 있었는지,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우주의 궁극적 시초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낸 것이 많다. 우주 배경 복사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서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그리고 보통 물질의 구성비가 68:27:5라는 것을 알아냈고, 우리 우주가 큰 스케일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평평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현재의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약 465억 광년이다. 지구의 관찰자가 동쪽을 바라보나 반대쪽인 서쪽을 바라보나 465억 광년의 거리가 한계다. 동쪽으로 465억 광년 떨어진 천체의 정보가 지금 이곳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138억 년이다. 우리에게 그 빛이 도달하는 138억년 동안 우주의 크기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465와 138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우리를 기준으로 우주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이 이곳의 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맞지만, 양쪽의 두 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관측하면 관측가능한 우주의 양쪽 끝은 거의 같은 우주 배경 복사를 보여준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는데도 양쪽 끝이 이처럼 같은 모습을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묻는 것이 바로 우주의 지평선 문제다. 이뿐 아니다. 우주가 지금까지 변화해 오는 과정에서 중력은 물질을 서로 모이게 했다. 만약 우주 초기에 어쩌다 물질이 조금 더 많이 모인 곳이 있었다면 중력으로 인해 더 많은 물질이 그곳에 더 모이게 된다. 결국 우주 초기의 물질 분포에 약간의 불균일성이 있었다면 이러한 불균일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주도 빈익빈 부익부를 따라서 점점 더 불균일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도 우주에서 관측되는 물질 분포의 불균일성은 놀라울 정도로 작다. 놀라울 정도로 균일한 우주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를 묻는 것이 바로 우주의 평탄성 문제다.

우주의 지평선 문제와 평탄성 문제에 답을 주는 것이 급팽창 이론이다. 지금 보면 우주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빅뱅 초기에는 둘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급팽창 이론은 우주의 지평선 문제에 답한다. 물질 분포의 불균일성이 아주 작았던 초기에 우주가 빠르게 급팽창해서 현재 우리가 보는 균일한 우주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 우주의 평탄성 문제에 대한 급팽창 이론의 설명이다. 물론 우주의 아주 이른 초기에 작은 불균일성이 있었다는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 물리학계에서는 초기의 작은 불균일성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저절로 만들어진 작은 요동에서 비롯했다고 설명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만들어질 수 있는 양자역학의 작은 요동이 씨앗이 되어서 큰 규모에서는 평탄해도 작은 규모에서는 불균일한 우주가 만들어졌다. 만약 우주가 완벽하게 균일했다면 별도 지구도 나도 당신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모든 존재의 근원은 어쩌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씨앗 양자 요동이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많은 물질과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생각하면 우주가 탄생한 초기에 이미 상당히 큰 에너지가 작은 공간에 모여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영(0)의 에너지에서 출발한 우주가 현재의 물질로 가득한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급팽창 이론의 거장 앨런 구스는 말한다. 급팽창 물질은 음의 에너지를 가져서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는 과정에서 0보다 에너지가 줄어든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이렇게 줄어든 에너지만큼 같은 크기의 양의 에너지를 가진 물질이 만들어졌어야 한다. 결국 우주는 궁극의 공짜 점심이다. 급팽창으로 말미암은 음의 에너지를 물질이 가진 양의 에너지로 바꿔 이용해 0의 에너지에서 출발한 우주가 지금의 별빛 충만한 우주로 변신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해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얘기가 무척 경이롭다.

테그마크는 또 우주의 급팽창은 빅뱅 이후가 아니라 빅뱅 이전이라는 통찰도 전한다. 아주 아주 작은 우주로 시작해서 급팽창이 이어지다가 빅뱅이 시작했다. 결국 빅뱅은 급팽창의 시작이 아니라 급팽창이 멈춘 시점에 일어난 셈이다. 현대의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공간은 처음부터 무한했다고 가정한다. 무한한 공간의 어느 부분에서 빠른 급팽창이 벌어졌고 곧이어 그곳에서 빅뱅이 발생해 우리가 보는 우리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우리 우주와 다른 빅뱅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보는 우주의 시작은 우리의 빅뱅이지만, 우주의 다른 곳에서의 빅뱅으로 다른 우주가 태어났을 수 있다. 그리고 우주가 진정한 의미에서 무한하다면 우주에는 무한한 빅뱅과 무한한 평행 우주가 있을 수 있다. 바로 저자가 얘기하는 1레벨 다중우주다. 1레벨의 여러 다른 평행 우주는 우리 우주와 다른 빅뱅에서 시작했지만 어쨌든 우리 우주와 같은 무한한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1레벨 평행 우주의 물리학은 우리와 같지만 시작은 다르다. 저자는 1레벨 평행 우주의 다른 지적 존재는 물리학 시간에서는 같은 내용을 배우지만, 역사 수업에서는 다른 내용을 배울 것이라는 재밌는 비유를 들려준다.

저자가 소개하는 2레벨 평행 우주의 개념도 재밌다. 우리 우주가 팽창을 계속하다 보면 먼 미래에 1레벨의 다른 평행 우주와 조우할 일말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2레벨 평행 우주는 다르다. 우리와 완벽히 동떨어져 있어도 갈 수 없는 평행 우주다. 마치 SF소설의 상상처럼 보이는 2레벨 평행 우주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미세조정 문제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컸다면 우리가 보는 은하는 형성될 수 없었다. 만약 전자기력의 크기가 4% 약했다면 태양은 이미 폭발했어야 했고, 약한 핵력이 우리가 알아낸 것보다 더 약했다면 수소 원자는 이미 모조리 헬륨으로 바뀌었어야만 했다. 전자의 질량이 현재의 값보다 작았다면 안정적인 별이 불가능했고, 더 무겁다면 DNA 같은 구조가 불가능했다. 우리가 보는 우주와 우리 자신의 모습은 물리학에 등장하는 여러 상수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이 값으로 아주 세밀하게 조정되어 있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우리 우주가 이토록 미세조정 되어 있는지에 명확한 답을 들려주는 물리학 이론은 없다. 그렇다면 어쩌면 수많은 다른 평행 우주가 존재하며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미세조정된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온갖 2레벨 평행 우주가 가능하다. 그곳에서는 전자 전하량도, 중력 상수도, 빛의 속도도 우리 우주와 다를 수 있다. 이런 모든 중요한 값들이 미세조정될 확률은 극히 낮을 수밖에 없으니, 2레벨 평행 우주 대부분에는 별도 없고 수소도 없고 당연히 생명도 없다. 2레벨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듣다가 내가 재밌게 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의 두 바위 장면을 떠올렸다. 어쩌다 다른 평행 우주로 옮겨가서 바위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대화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기가 어디냐고 엄마 바위가 묻자 딸 바위는 수많은 다른 평행 우주 중 하나라고 말한다. 딸 바위는 이어서 사실 대부분 평행 우주는 바로 이곳처럼 생명이 없어 척박한 우주라고 말한다. 미세조정 문제와 2레벨 다중우주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다. 만약 2레벨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곳의 학생은 역사학은 물론 물리학 시간에서도 다른 내용을 배울 것이 분명하다. 그곳에서는 전자의 질량과 빛의 속도가 우리와 다르다.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급팽창이 알려주는 것이 1레벨 다중우주, 미세조정 문제와 관련된 2레벨 다중우주에 이어서 저자는 3레벨 다중우주를 상상한다. 3레벨 평행 우주는 양자역학의 파동함수의 붕괴와 관련된다. 교과서에 실리는 표준적인 양자역학에서는 측정하기 전 양자 입자의 상태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빙글빙글 책상 위에서 돌고 있는 동전으로 비유하면 양자역학의 측정 과정은 돌고 있는 동전을 손바닥으로 눌러서 멈추는 것에 해당한다. 측정하고 나서 보면 동전은 앞면 또는 뒷면을 보여 주지만 측정 전 돌고 있는 동전은 두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다.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에서는 측정 과정에서 양자 상태가 딱 하나의 상태로 실제로 붕괴한다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다고, 양자 상태는 결코 붕괴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양자역학의 비붕괴 해석 중 하나가 바로 에버렛의 다세계(many world) 해석이다. 돌고 있는 동전을 측정하는 순간 우주가 둘로 나뉘며 우리는 둘 중 한 우주에서는 앞면을 보고 다른 우주에서는 뒷면을 본다는 해석이다. 결국 양자 상태의 측정이 일어날 때마다 우주는 수많은 갈래로 나뉘고 이렇게 나뉜 여러 평행 우주가 모여서 3레벨 다중우주를 이룬다. 저자 테그마크는 에베렛의 양자 해석을 지지한다. 에버렛은 언젠가는 뉴턴, 아인슈타인과 동급의 천재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적어도 대부분의 3레벨 평행 우주에서는 그럴 것이라고, 저자는 유머러스하게 3레벨 다중우주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 중 가장 재밌던 것 중 하나가 3레벨 다중우주의 존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양자 기관총 사고실험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1/2의 양자역학의 확률로 총알이 발사되는 총이 있다. 만약 3레벨 다중우주가 있다면, 이 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우주는 서로 다른 두 평행 우주로 분기한다. 둘 중 한 우주에서는 내가 죽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살아있고, 내가 살아있는 3레벨 평행 우주의 나는 두 번째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만약 3레벨 평행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100번 방아쇠를 당겨도 여전히 내가 살아있는 우주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100번의 양자 기관총 실험 후에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3레벨 다중우주가 존재할 확률은 1의 값에 아주 아주 가까울 수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다른 평행 우주에의 내 친구 들은 내가 미쳐서 자살했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위의 황당한 사고실험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다. 만약 3레벨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내가 지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인 평행 우주도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미래가 온다면 이글을 읽은 오늘을 꼭 떠올리시길. 3레벨 다중우주가 존재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을 독자가 몸소 증명한 셈이 된다. 3레벨 평행 우주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위에서도 언급한 영화 <에에올>의 상상이다. 우주는 매번 수많은 평행 우주로 나뉘며 이렇게 평행으로 진행되는 다른 우주에서의 나는 유명한 배우일 수도, 무술의 초절정 고수일 수도 있고, 노벨 물리학상을 다섯 번 받은 물리학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흐물흐물한 평행 우주도 있다.

저자가 이어서 들려주는 4레벨 다중우주는 정말 엄청난 상상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입자 들은 몇 개의 숫자로 표현되는 정보인 양자수(quantum number) 말고는 다른 아무런 정보도 가질 수 없다. 두 전자의 양자수가 같다면 둘을 구별하는 방법은 없다. 물리학자 들이 ‘전자는 머리카락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머리카락이 있다면 머리카락의 색깔과 개수로 두 전자를 구별할 수 있겠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전자는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리학의 기본입자 존재는 순수한 수학적 구조로부터 유도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대칭성이다. 강한 핵력, 약한 핵력, 그리고 전자기력의 상호작용이 가진 대칭성을 기호로 표현하면 SU(3)·SU(2)·U(1)로 적힌다. 이 한 줄의 수식이 현대 물리학 표준모형의 근거이며, 대칭성의 수학적 구조로부터 물리학의 기본입자 존재가 유도된다. 이론물리학자인 저자는 수학적 구조에서 비롯하는 물리학적 실체에 주목한다. 그리고는 도발적인 가설을 제안한다. 저자의 수학적 우주 가설에 따르면 우리의 외적 물리 실체 모두가 수학적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한 수학적 구조의 스스로 자각하는 일부분이다. 저자는 이어서 시간은 환상이 아니지만 시간의 흐름은 환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새와 개구리의 관점을 소개한다. 개구리가 은하 주위를 도는 수천억 개의 별을 볼 때, 새는 수천억 가닥의 얽혀있는 스파게티를 본다. 새가 보는 현실에 변화는 없다. 새가 보는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스파게티 국수의 기하학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인류 멸망 시점을 추정하는 재밌는 계산을 보여준다. 개구리가 아닌 새의 관점이 필요한 계산이다. 인류 전체가 탄생해서 생존하다 사라지는 얽혀있는 전체를 떠올려 보라. 저자는 먼저 자신을 인류가 탄생한 후 약 500억 번째의 개체라고 추정한다. 만약 인류의 멸종까지 존재하는 전체 인간의 누적 숫자가 N이라면 우연히 N명 중 한 명을 골랐을 때 이 사람이 500억 번째 이내일 확률은 500억/N이다. 만약 N이 1조 명보다 더 크다면 우연히 저자가 500억 번째 이내에 태어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바로 과학에서 영가설을 기각하는 기준으로 자주 이용하는 확률값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탄생해서 소멸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이 태어날지에 대한 추정치인 N은 1조보다 작아야 한다. 앞으로 누적해서 1조 명의 인간이 태어날 시간을 추정하면 인류는 결국 서기 1만 년이 도래하기 전에 멸종할 것이라는 재밌는 추정이다. 미래에 태어날 인간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새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밌는 계산이다.

영화 <에에올>의 두 바위 장면에는 2레벨 다중우주에 관련된 앞에서 소개한 대사말고도 다른 멋진 대사가 등장한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 기간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으며, 과학의 역사에서 모든 새로운 발견은 우리 모두가 얼마나 작고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했다는 대사다. <에에올>의 이 대사를 떠올리며 아래에 적은 테그마크의 멋진 문장을 읽었다.

/동아시아
/동아시아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오만하게 우리가 주인공이며 모든 것이 우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반복해서 깨달았다. 사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고 태양은 은하 중심 주위를 돌고 있으며, 은하는 우리 우주에 있는 수없이 많은 은하들 중 단지 하나일 뿐이며, 우리 우주는 4단계 평행 우주의 위계 구조 안에 있는 우주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겸손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물 들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과대평가했던 반면, 우리 두뇌의 힘을 과소평가해 왔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조상 들의 어떤 상상보다도 장엄한 실체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이 반복해 알려준 인간 존재의 사소함에 대한 깨달음의 끝판왕이 저자가 보여주는 네 종류의 다중우주의 상상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행성 지구, 사소하고 평범한 생명 인간에 대한 깨달음에 이어 궁극적인 인간 존재의 사소함을 저자는 말한다. 바로 우리 우주 자체도 사소하고 평범한 우주라는 주장이다. 그래도 수많은 수학적 4레벨 다중우주 중 한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소중하다. 우리는 우주의 가장 정교한 수학적 매듭이며 스스로를 자각하는, 우리가 아는 한 유일한 수학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과감한 주장에 동의하든 말든 저자가 보여주는 무한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상상이 무척 부럽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저자는 물리적 실체의 속성이 수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실체는 속성과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속성은 실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일까요? 물리적 실체의 속성이 수학적이라고 해서 실체가 수학이라고 또는 수학적 구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2. 저자는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면 실제로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3. 뉴턴의 중력 법칙 같은 물리학의 법칙은 발견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발명되는 것일까요?

4. 외적 실체의 전부를 설명하는 수학적 묘사가 있고 둘이 완벽히 서로 대응한다면 저자는 외적 실체가 수학적 구조라고 주장합니다. 둘 사이에 완벽한 1:1 대응관계가 존재하면 둘은 같은 것일까요? 같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5. 우리는 자주 존재의 의미를 찾습니다. 의미는 우주의 속성인가요? 아니면 주관적이라는 의미에서 환상인가요?

6. 우리 뇌의 양자 중첩은 10의 –20승(0.000...1의 꼴로 적으면 소수점 아래 20자리에 1이 나오는 작은수)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깨지며, 따라서 의식이 양자 현상일 수는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보를 처리하고 의식을 형성하는 생명은 불가능할까요?

7. 의식은 정보가 처리될 때의 주관적 느낌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의식을 갖게 될까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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