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났다. 의사가 부모에게 말한다. “건강해 보이지만 이 아기는 언뜻 혼수상태처럼 보이는 상태에 매일 규칙적으로 빠져들 거예요. 몸을 꼼짝하지 않아서 죽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무려 생애의 3분의 1을 그렇게 보낼 겁니다. 이 상태에서 아기는 없는 것을 보고, 진짜일 리 없는 것을 믿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을 혼동하며,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오가게 됩니다.” 부모는 깜짝 놀라 자신의 아기가 무슨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의사가 들려준 위의 얘기를 다시 읽어보라. 이번에는 잠과 꿈을 떠올리면서. 잠을 잔다는 것, 그리고 꿈을 꾼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묘한 일이다. 아기는 아무 문제 없다.
미국 버클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매슈 워커는 수면(잠)을 연구한다. 4년의 긴 집필 기간을 마치고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출판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이 책은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왜 우리가 충분한 시간 양질의 잠을 자야 하는지, 그리고 잠이 부족하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지, 명확하게 설명한 멋진 책이다. 책을 읽고 나면 충분한 수면이 온갖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느껴질 정도다. 책 내용을 아래에 소개하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일부 비판을 소개한다. 저자는 수면에 대한 여러 다양한 연구 중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주로 골라 책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주장이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 것으로 읽히는 이유다. 물론 충분한 수면이 여러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명확한 학계의 결론이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려고 기존 연구를 일부 편향된 방식으로 취사선택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일부 과장과 편향은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우리는 매일 밤 잠들고 다음 날 아침 깨어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규칙적인 수면과 각성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약 2만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시교차상핵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촉발된다. 햇빛 없는 깜깜한 곳에서도 시교차상핵은 24시간보다 조금 긴 주기의 리듬을 내생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매일 규칙적으로 변하는 햇빛 밝기의 신호가 시교차상핵에 영향을 미쳐 우리 몸은 딱 24시간 주기의 규칙적인 패턴을 갖게 된다. 어두운 밤 수면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우리 몸에 보내는 것이 어둠의 호르몬, 뱀파이어 호르몬이라는 재밌는 이름으로 불리는 멜라토닌이다. 수면과 각성 리듬의 지휘자인 시교차상핵의 영향으로 뇌 안 솔방울샘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의 양이 주기적으로 변하고, 우리 몸 안 깊은 곳 심부 체온도 마찬가지로 하루의 주기로 변한다.
시교차상핵이 지휘해 생성하는 약 하루의 각성 주기를 갖는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과 함께 수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낮의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뇌 안에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늘어나고 밤의 수면 상태에서는 줄어들어 아침에 눈뜰 때 농도가 최소가 된다. 깨어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늘어난 아데노신이 우리 뇌 안 수용체에 더 많이 결합해 수면 압력을 늘린다.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졸음을 느끼는지는 시교차상핵이 만들어내는 각성 강도의 시간 변화와 깨어있을 때 늘어나는 아데노신이 만들어내는 수면 욕구 패턴의 차이로 결정된다. 밤이 다가오면서 각성 강도는 줄고 수면 압력은 늘어, 수면 압력과 각성 강도의 차이가 커진다. 우리는 강한 수면 욕구를 느낀다. 자, 이제 잠잘 시간이다.
건강한 사람이 잠을 자면 약 90분의 수면주기가 8시간 정도의 수면시간 중 대여섯 번 반복된다. 90분 동안 이어지는 수면 주기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렘(REM, Rapid Eye Movement)수면이다. 줄거리가 풍성한 서사적인 구조를 가진 꿈을 꾸는 렘수면 단계에서는 감긴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렘수면이 나타나기 전에는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이 관찰되지 않는 비렘(REM)수면 단계가 있다. 90분 정도의 수면 주기는 얕은 단계에서 시작해서 깊은 단계로 이어지는 비렘수면을 먼저 거치고, 이어서 렘수면 단계로 마친다. 아침에 눈 뜨기 바로 전이 렘수면 단계여서 깨자마자 우리는 어느 정도 방금 꾼 꿈을 떠올릴 수 있다.
비렘수면과 렘수면은 둘 다 중요하다. 우리 뇌의 안쪽에 있는 해마는 잠들기 전 낮 동안의 경험을 단기적으로 저장하는 부위다. 잠의 전반기의 약 90분간의 수면주기에는 깊은 비렘수면의 비중이 더 큰데, 바로 이때 해마의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피질로 옮겨져서 해마의 저장 용량을 비우는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만약 깊은 비렘수면이 부족하면 다음 날 해마에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커다란 돌을 멋진 석상으로 조각하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깊은 비렘수면이 돌덩이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남은 돌덩이를 세부적인 모습으로 다듬는 역할을 하는 것이 렘수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비유를 생각하면 하룻밤 수면 중 아침이 다가올 때의 마지막 수면 주기에서는 깊은 비렘수면의 비중은 거의 없고 렘수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요즘 내가 이용하고 있는 스마트 시계에는 수면 패턴을 파악해 보여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수면 패턴을 그려보니 책의 설명과 같아서 신기했다. 깊은 비렘수면은 잠들고 난 후의 처음 한두 번의 수면 주기에서 길었고, 렘수면은 아침에 깨어나기 직전의 마지막 수면 주기에서 길었다.
뇌는 각성 상태와 비슷한 활성을 보여주는데, 몸은 각성 상태와 달리 움직이지 않는 렘수면은 역설수면이라고 불린다. 렘수면 단계에서 꿈꾸는 뇌는 몸을 움직이라는 신호를 방출해도 근육으로 이어지는 운동 신경 경로는 차단된다. 꿈속에서 싸우거나 달려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아무리 꿈의 내용이 위험해도 우리는 잠자리에서 안전하게 꿈꾸기를 이어갈 수 있다. 꿈속에서는 줄거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꿈의 내용이 깨고 나서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일 때가 간혹 있다. 어려서 살던 집의 현관문을 열고 나왔더니 발밑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잠에서 깨서 돌이켜 보면 이상해도 막상 꿈꾸고 있을 때 우리 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관장하는 우리 뇌 앞부분 전전두피질의 활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렘수면 때 일어나는 전전두피질 활성 저하와 운동 신경 경로 차단으로부터 나도 몇 번 경험한 가위눌림 현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꿈에서 어떤 끔찍한 존재가 몸을 누르고 있어서 꼼짝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렘수면의 과학을 떠올릴 일이다.
렘수면 단계에서 꿈꿀 때 우리 뇌 안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서로 관련 없던 정보 사이에 놀라운 방식으로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어서 창조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가 창의성이라면 렘수면 꿈꾸기가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꿈이 만들어낸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주는 여러 역사적 사례가 있다. 멘델레예프는 꿈에서 원소의 주기율표를 처음 떠올렸고, 폴 매카트니의 음악 <예스터데이>,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꿈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도 젊어서 꿈에서 흥미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린 적이 있다. 특히 그 전날 연구가 잘 진척되지 않아 끙끙거리며 깊게 고민했을 때 그랬다. 눈앞에서 아른아른 수식을 떠올리며 고민하다 밤에 잠들었는데 새벽녘 꿈에서 어렴풋이 해결책을 떠올리고는 했다. 잠이 훌쩍 달아나서 벌떡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벽에 연구실로 달려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저자는 책에서 렘수면은 지식과 지혜 중 지혜, 학습과 이해 중 이해를 준다고 말한다. 영어로 “sleep on it”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러분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이 있을 때 그 고민을 베개 삼아 푹 주무시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면 고민의 해결 방안이 스르륵 떠오를지 모른다.
렘수면이 아닌 비렘수면 단계에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이 몽유병이다. 자면서 걷고 말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몽유병 상태에 있는 환자의 뇌파를 측정하면 비렘수면의 단조롭고 느린 패턴을 보여준다. 렘수면 단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몽유 상태의 환자를 깨워도 기억하지 못한다. 또 다른 수면 장애로는 보통 기면증이라고 부르는 발작 수면도 있다. 2천 명에 1명꼴로 발생하는 기면증 환자가 낮 시간 느끼는 수면 충동은 우리가 사나흘 잠을 자지 못했을 때 느끼는 정도의 엄청난 강도라고 한다. 기면증 환자는 잠에서 깬 다음에도 렘수면의 마비 상태가 간혹 풀리지 않는 수면 마비 현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멀쩡히 활동하다가 농담을 듣거나 하면 웃다가 갑자기 근육 통제력을 상실해 쓰러지는 탈력 발작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몽유병과 기면증은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수면 장애다.
진화의 역사에서 잠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심지어 캄브리아기 대폭발 때 처음 등장한 지렁이도 잠을 자고, 바퀴벌레, 전갈, 상어, 잉어, 개구리, 거북, 카멜레온도 잠잔다. 모든 조류와 포유류도 잠을 자니 멸종한 공룡도 잠을 잤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 보라. 잠자면서는 식량을 구할 수도, 사회 활동을 할 수도, 짝을 찾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스스로는 물론 자식도 보호할 수 없다. 그런데도 모든 동물이 매일 잠을 잔다. 진화가 잠을 고안한 것이 실수일 리 없다. 잠을 자면서 무릅써야 하는 여러 위험과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커다란 혜택을 잠이 제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도 잠이 부족하면 온갖 문제가 생기고 극단적인 수면 박탈은 치명적일 수 있다. 잠을 안 자고 버틴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기네스북에 기재되지 않는다. 수면시간 단축 경쟁이 너무 위험해 기네스북은 더 이상 관련 기록을 수록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동물 실험은 과거에 진행된 바 있다. 수면을 박탈한 쥐는 15일 정도 후 사망했는데, 주로 패혈증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패혈증을 일으킨 세균은 몸밖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었다. 쥐의 창자에 함께 살아가던 세균이었다고 한다. 수면 박탈이 면역계를 파괴해 결국 쥐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세계보건기구 WHO(World Health Organization)가 야간 교대 근무를 유력한 발암 요인으로 분류했듯이, 잠이 부족하면 암에 걸릴 위험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적정 수면시간에 미치지 못하면 면역계가 손상되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혈당 수치를 교란해 당뇨병 위험도 높인다. 수면이 부족하면 교감 신경계가 과잉 반응한다.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도 증가하며,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만성적으로 높게 유지된다. 코르티솔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더욱 높인다. 수면이 부족하면 잠잘 때 많이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도 줄어서 손상된 혈관 내피를 재생하는 것도 문제가 생긴다. 결국 수면 부족은 혈관 파열 가능성을 높여서 심장 마비와 뇌졸중의 위험을 키운다. 게다가 정신질환 증상도 더 심해진다. 수면 부족은 포만감을 알리는 호르몬은 억제하고, 배고픔의 느낌에 관여하는 호르몬은 늘린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더 먹고 싶게 만들어 수면 부족은 비만으로 이어진다. 또 수면 부족으로 인한 졸음운전은 해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낳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 전체에 만연한 감염병으로 선언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바빠서 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잠 부족으로 일의 효율이 떨어져 근무 시간에 더 바빠지는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만병통치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한 양의 양질의 수면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제공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여덟 시간 규칙적인 수면이 꼭 필요하다. 요즘 불면증으로 고통을 겪는 현대인이 많다. 책에서 저자는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한다. 책의 부록으로 수록된 건강한 수면을 위한 열두 가지 행동 지침을 아래에 옮겨 적으며 글을 마친다.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1. 수면 시간표를 지켜라.
2. 운동은 좋지만 너무 늦게 하지는 마라.
3. 카페인과 니코틴을 피하라.
4. 잠자러 가기 전에는 알코올 함유 음료를 피하라.
5. 밤에는 음식을 많이 먹지 말라.
6. 잠을 못 이루게 하거나 설치게 하는 약을 피하라.
7. 오후 3시 이후에는 낮잠을 자지 말라.
8.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긴장을 풀어라.
9. 잠자러 가기 전에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라.
10. 침실을 어둡게 하고, 차갑게 하고, 침실에서 전자기기를 치워라.
11. 적절히 햇볕을 쬐라.
12. 말똥말똥하다면 잠자리에 누워있지 말라.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결론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려고 저자가 기존 연구 결과를 일부 왜곡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충분한 수면을 강조해 건강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연구 결과를 과장하고 왜곡해 소개해도 되는 것일까요?
2. 책에서 소개한 C-과정과 S-과정 커브를 이용해 낮잠 후의 수면 욕구 변화를 예측해 보세요.
3. 밤낮이 바뀌지 않는 외계 행성의 생명은 어떤 수면 패턴을 보여줄까요?
4. 지구의 자전이 생명의 수면 주기를 정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적절한 자전주기도 외계 생명 가능성을 생각할 때 중요한 요인일까요?
5. 자각몽과 수면 마비 경험이 있다면 얘기 들려주세요. 수면제 사용 경험도 궁금해요.
6. 구글과 나사의 잠 장려 문화를 저자는 칭찬합니다. 성공적이라면 왜 널리 확산되지 않았을까요?
7. 보험사에서 개인 수면 패턴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하자는 저자의 제안에 대한 여러분 의견이 궁금합니다.
8.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는 중고교의 등교 시간이 9시인 곳이 있어요. 늦어진 등교 시간의 효과를 예측해 보고, 실제 연구 결과와 비교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