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증시가 무서운 질주를 계속한 끝에 마침내 대망의 6000포인트마저 넘어선 뒤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터진 게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그동안 주가가 너무 가파르게 상승한 때문이기도 하다. AI 혁명이 불러온 반도체 경기 호황이 한국 증시를 멱살잡이하듯이 강하게 끌어올리는 바람에 노련한 외국인들의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 증시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얼마만큼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는지는 아래 그림 하나만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전체 시가총액이 2000조원대에 머물렀던 게 지금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만 하더라도 205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급팽창을 거듭해 왔다. 언제 다시 이토록 뜨거운 랠리가 재현되기나 할까 궁금할 정도로 역사에 남을 초강세장이 장장 9개월 동안 휴식 없이 강행군을 지속해 온 셈이다.
코스피 시장만으로도 숨이 찰 만큼 가파른 상승세인데, 코스닥 시장까지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맞물리며 덩달아 달아오른 모습도 눈에 띈다. 냉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십 년 동안 코스닥 시장을 한사코 외면해 온 까닭은 뻔하다. 코스피 시장에 비해 수익창출력이 미약하고 지나치게 고평가된 밸류에이션 때문이다. 정부가 너무 앞장서서 코스닥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하려는 시도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은 2015년 말 기준으로 1448조원에 불과했다.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던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불과 10년 2개월 만에 5805조원까지 급격히 불어났다. 2016년 이후 신규상장된 종목들의 시가총액이 약 1004조원 포함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10년 동안에 시가총액이 실질적으로 불어난 규모만 3352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 규모도 어느새 2018조원까지 급팽창했다. 시가총액이 지난해 5월 말 이후 123.8% 불어나는 동안 외국인들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무려 172.4%나 폭증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종목일수록 주가 상승 폭이 훨씬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더욱 자주 목격하듯이, 외국인들의 국내 증시에 대한 비중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그들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확대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 주말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한국 증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반도체 투톱의 맹활약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큼 압도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팽창한 종목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포함한 '반도체 투톱'의 합산 시가총액은 2026년 2월 말 기준으로 무려 2155조원까지 불어났다. 2015년 말 기준으로 233조원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보면 실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지난 10년 동안에 신규로 상장된 주식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시가총액이 약 4356조원 불어났는데, 이 가운데 반도체 투톱에서만 1922조원이나 불어났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어느새 1282조원에 이르렀고,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756조원까지 치솟아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지난 10년 동안에만 무려 33.8배나 커졌다. SK하이닉스를 상당 기간 고이 묻어둔 사람이라면 FOMO라는 단어쯤은 가볍게 웃어넘길 만하다.
반도체 투톱의 시가총액은 불과 9개월 전만 하더라도 519조원에 머물렀다. 이 수치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기록했던 620조원대에 비해서도 한참이나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6월 이후 불과 9개월 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만 시가총액이 1636조 원 불어났으니, 시가총액 1, 2위로 군림하는 두 종목이 쌍두마차 격으로 폭발적인 주가 상승세를 보인 경우는 한국 증시 역사에서도 일찌감치 유례를 찾을 수 없던 광경이다.
2016년 이후 시가총액이 증가한 종목들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반도체 투톱'이 얼마만큼 압도적인 기세로 팽창했는지를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시가총액이 가장 크게 불어난 상위 20종목 가운데 삼성전자(우선주 포함)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만 44.1%에 이른다.
이토록 화려한 주가 대폭발 이면에는 주가 하락으로 신음하는 종목들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10년 전 대비(신규상장 종목의 경우, 상장된 첫해 연말 시가총액 대비) 시가총액이 감소한 종목들은 시가총액 감소액 1조원 이상인 종목만 60개사에 이르며, 이들의 시가총액 감소 규모는 228조원에 이른다. 시가총액이 감소한 종목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때나마 수많은 투자자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종목들이 상당수 포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1949년에 출간된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속에 담긴 문장이 얼마만큼 교훈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파에톤이 태양의 전차를 몰겠다고 고집부렸을 때, 경험 많은 운전자인 그의 아버지는 그 초보자에게 어떤 충고를 주었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고 그 대가를 치렀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포이보스 아폴론의 조언을 세 단어로 요약했다.
Medius tutissmus ibis
가운데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한편,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2월까지 진행된 강세장에서 기록적인 주가 상승률을 기록한 종목들은 다음과 같다. 이 기간에 펼쳐진 랠리는 무엇보다도 초대형주 위주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세가 특징이다. 그만큼 이번 급등 장세에서 소외된 종목들도 매우 많다는 얘기다. 향후로도 시중 유동성이 꾸준히 유입된다면 중소형주들 위주의 수익률 게임이 전개될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