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08년 9월 21일, 감사원은 이명박정부와 함께 출범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실상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거래소에 대한 감독과 견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거래소의 구체적인 방만 경영 사례를 내놓습니다. “2007년 기준 1인당 평균 인건비 1억1700만원, 영업비용 2억8300만원은 다른 기관에 비해 지나치다”.
‘공공기관’. 개인이 아닌 사회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한국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정부가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이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공매도 전면 허용”을 강조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지정 요구가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가 통합해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출발했습니다. 이어 감사원 권고 다음 해인 2009년 1월 29일,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지정과 함께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투자·출자·재정 지원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기관으로, 기재부 장관이 해마다 지정합니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뉩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직원 50인 이상인 공공기관 가운데 지정합니다. 공기업은 자체 수입액이 총수입의 2분의 1 이상인 기관 중에서, 준정부기관은 공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지정합니다. 준정부기관은 다시 <국가재정법>에 따라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과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나뉩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자금 운영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의사 결정 때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받아야 하며, 다른 법인에 출자할 때도 기재부와 미리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거래소는 공공기관 지정 6년 만인 2015년 1월 29일 민간기업이 되었습니다. 다만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있습니다.
14일 기재부와 국회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달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서 ‘지정 유보’ 결정이 유지됐습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거래소에 정기 검사 내지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 지정이 필요하다는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당초 공공기관 해제 조건이었던 복수 거래소 설립에 대한 이행 조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기재부도 이 같은 국회의 움직임에 거래소의 공공기관 재지정을 통해 방만 경영 재발과 독점적 폐해 등을 막을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사원도 ‘낙하산 인사’ 등의 폐해로 공공기관 재지정에 긍정적이었습니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거래소에 대한 종합검사 등 여러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금융위를 빼고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흐름에도 공운위는 결국 재지정을 유보했습니다. 공운위는 거래소와 함께 금융감독원의 공공기관 지정도 유보했습니다. ▲해외사무소 정비 ▲경영실적 평가 강화 등 유보조건 이행이 완료되면 다시 검토한다는 것입니다. 공운위는 오히려 한국예탁결제원까지 공공기관에서 제외했습니다.
거래소의 공공기관 재지정이 유보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공운위가 열리기 사흘 전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의 ‘공매도 발언’이 불을 댕겼습니다. 손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거래소의 핵심전략을 내놨습니다. 손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공매도 전면 허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손 이사장은 간담회에서 “금융당국하고 의견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만 선진자본시장으로 발돋움하려면 공매도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지수 편입이 논의되고 있고, 다른 나라는 코로나 시국에도 제한을 안 했는데 우리만 계속 제한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규제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수순이 필요하다”라며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는 시기상조다. 방향만 제시했고 시기나 방법은 정부 당국과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MSCI 선진지수 편입과 관련해서는 “이제는 발돋움을 위해 필요한 시점이라는 여론이 조성됐다”라면서도 “계량적 요건은 갖췄는데 시장 접근성에서 6개를 못 갖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이러니 공매도랑 한통속이란 거지” “개인 소액주주 피 빨아먹은 불순세력” “개미들이 공매도를 왜 반대하는지는 공매도 기사에 댓글만 읽어도 알 텐데. 그런 건 선진국 따르면서 전산화랑 상환기간 제한 같은 건 왜 안 따름. 수기작성과 무기한 연장이 선진시장인가요?” 등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불만을 폭발했습니다.
누리꾼들의 분노는 보름이 더 지난 이날(14일)도 <외국인 지난달 주식 1.6조원 순매도> <실체 드러난 LG엔솔 뻥튀기 청약> 등 투자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래소는 7년 전 “철저하게 시장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정신으로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국민의 신뢰받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분, 잘 지켜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