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부터 극한의 장마가 닥치자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상했다. 여기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번에도 역시 재난 후에 정부와 정치권에서 무관심한 행태로 바뀐 국가 시스템을 맡은 공복(公服)이다. 염량세태(炎涼世態)라는 사자성어가 지금 상황에 제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글귀는 더웠다 서늘했다 하는 자연 변화처럼 세상 이해관계가 팥죽 끓듯 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 세상과 비교하며 필자는 그야말로 절묘함을 느낀다. 한편 금융을 오래 바라본 필자는 이 사자성어에서 다른 뜻을 읽을 수 있다. 염량(炎涼), 즉 자연 변화만큼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세상, 즉 요즘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등장하는 ‘복잡계’(複雜界)라는 곳이 금융이라는 생각이다. 금융시장에서는 한 사건이 발생한 후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상호작용하며 엄청난 경우의 수가 발생(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시장이 변화할 때 결과로 닥칠 가지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뜻이며, 이는 곧 시장이 그토록 싫어하는 불확실성이다. 한편 2023년 초 메리츠증권이 벌인 금융 거래도 복잡계에 들어가는 조짐이 현저해 보여 필자는 재차 관심을 가져본다.
2023년 1월 조정호 회장이 이끄는 메리츠금융그룹은 이희문 부회장의 메리츠증권 기획 아래 롯데건설 구제를 위한 1.5조 원 자금 공급에 나섰다.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 등 메리츠금융지주 계열사가 9000억 원 규모 전자단기사채를 매입했다. 나머지 6000억 원은 롯데그룹 계열사가 동원하고 롯데물산, 호텔롯데가 자금 보충 의무를 맡았다. 이 금융 거래에서 메리츠증권은 채권 보전을 철저히 하면서도 12%의 고리를 받았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표적인 상생 모델로 칭찬하는 등 뜻밖의 평판 개선 효과도 얻어 1석2조였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메리츠증권의 이 거래가 궁지에 몰린 기업에 가혹했으며 폭리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롯데-메리츠금융 거래 이후 고금리와 부동산 수요 억제로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며 미분양이 급증하는 추세가 가라앉지 않는 등 부동산PF 시장이 더욱 악화했다. 2020년 이후 부동산PF 시장을 좌지우지한 새마을금고도 부동산PF 부실과 비리로 뱅크런 사태까지 이어지자 증권사의 부동산PF도 금융 시스템 불안 대상이 됐다. 이 위험을 감지하고 지난 4월 3일 한국신용평가는 신용위험 분석을 맡고 있는 메리츠증권을 포함한 26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증권사 부동산금융 손실 시나리오테스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익스포저는 메리츠증권이 88.4%로 전체 평균인 44.2%의 꼭 두 배에 이른다. 익스포저란 시장 상황이 변화할 때 손실 발생 위험이 있는 자산(대출)을 말한다. 한신평은 경제적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대형 증권사의 영업 순자본이 평균 7.4% 감소한다고 추정했고, 필자의 주먹구구 추산이지만 부동산PF 익스포저가 두 배 큰 메리츠증권의 영업 순자본이 14% 이상 감소할 수 있다. 한신평 추정 2023년 1분기 말 메리츠증권의 영업용순자본은 4조9793억 원으로 어림잡아 14% 추정 손실은 6900억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절대적인 추산 금액은 필자의 주먹구구 계산이므로 한계가 명확하다. 다만 롯데-메리츠증권 금융 거래 이후 메리츠증권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또한 2022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롯데-메리츠증권 금융 거래 이전인 2022년 말 메리츠증권의 지급보증액은 이미 3조3998억 원이며 이 가운데 12개월 이내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부분은 3조3483억 원으로 98%에 달한다. 단기적인 부동산PF 불안정이 메리츠증권에 상당한 재무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사업보고서에는 채무보증 및 대출 약정 금액 3.4조 원을 우발부채로 전액 표시하고 있다. 우발부채란 예상 못 하게 회사에 부채로 확정되면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거래를 의미한다.
한편 보도에 따르면 롯데건설과 메리츠금융그룹은 부동산PF 상황이 악화하자 진퇴양난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금융은 2010년 부동산PF 시장을 공략하며 급성장했는데 2023년에도 다시 같은 전략으로 기회를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예탁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20개 증권사가 연초부터 지난 4월 11까지 유동화증권 신용보강액은 58% 감소했으나 메리츠증권은 60% 늘려 전체 증권사의 약 29% 비중을 차지했다. 메리츠금융의 공격적 전략을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다. 여기에는 롯데건설 자금 거래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상황이 악화하고 고금리가 예상 밖으로(High for longer) 지속하면서, 메리츠금융그룹은 1년 이내 롯데건설 자금 지원 협약을 마무리하고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었으나 자금 회수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롯데건설은 연초에 이미 6000억 원을 롯데그룹 내에서 조달했고, 그룹 자금줄인 롯데케미칼도 신규 투자에 자금이 말라 그룹의 추가 자금 조달은 어려운 상황이다. 더군다나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는 신용등급도 하락하는 등 시장 자금 조달 여건도 최악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메리츠증권과 롯데건설 간 대환, 신규 대출 등이 일부 원활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러 가지 비우호적 금융 상황 변화로 메리츠증권이 늘 해온 냉정한 이익 극대화 행태에 따라 롯데와의 관계를 쉽게 정리하기 쉽지 않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25일 증권사 부동산 PF 불안을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발표했다. 4월 신용평가 회사들이 부동산PF 증권회사 리스크를 분석한 후 PF-ABCP 대환부터 증권사 경영 평가 회계의 극단적 완화까지 증권사 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수위 높은 내용은 모두 포함했다. 지난해 11월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상환(콜옵션)에 시장 전체보다는 자사 이익만을 위한 의사결정을 했을 때 금융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를 반면교사로 금융당국은 증권회사 경영진이 사소한 이익 추구 행위를 벌일 여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율로 맡기기에는 증권회사 리스크가 이제는 너무 크고, 만에 하나 증권산업에서 만들어지는 금융소비자의 공포가 전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을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차단한다는 의도였다. 아마 어부지리로 어마어마하게 큰 당근을 받아 든 증권회사는 당황했을 것이다.
5월에 당근을 던졌던 금융당국은 7월 25일에는 증권사 부동산 PF 성과 보수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은행업과는 달리 증권회사에는 성과 지상주의 문화가 시스템을 지배한다. 조금 과장하면 성과 보수나 인센티브에 대다수 증권회사 직원은 교조적(敎條的) 정서를 갖는다. 주식, 채권 등 위탁거래는 물론 특히 기업금융, 부동산금융 등은 담당업무 직원이 떼를 지어 성과 보수를 따라 회사를 전전하고 증권회사 경영진은 경영평가 개선을 위해 이들을 유치한다. 금융당국은 이미 은행의 공공재 성격을 강조하며 은행권 금융 임직원의 성과 보수 잔치를 금융권 패악으로 삼아 개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시각을 은행뿐 아니라 범위를 확대하여 금융산업 전체에 공공재라는 시각을 적용하면 증권산업의 극히 일부 임직원이 독점하는 천문학적 성과 보수는 금융당국이 보기에는 기가 찰 수밖에 없다. 검찰 시각에서 증권산업의 성과 배분 방식은 부당이익의 불공정한 나눠 먹기로 볼 개연성이 크다. 공정한 금융을 주제로 활동하는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시각은 과격하지만,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이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콕 짚어 부동산 PF 성과 보수 체계를 손보겠다는 것은 다른 어떤 조치보다 큰 충격과 규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지난 3월 2022년 사업보고서를 각 증권회사가 공개하자 단연 메리츠증권의 성과 보수가 입줄에 올랐다. 공개된 자료에는 안재완 전무가 47억 원, 최희문 대표이사가 37억 원, 김기형 사장이 36억 원, 여은석 부사장이 35억 원, 정문화 영업이사가 28억 원을 받았다. 자료에서 김기형, 여은석 두 사람은 부동산PF 전문가로 알려지는데, 이들이 연봉 합계 71억 원을 앞날이 불투명한 부동산 PF 사업에서 챙겨 주목된다. 이들은 2019년부터 메리츠증권 보수 상위 5인에 명단을 올렸는데, 이후 이들 2인이 받은 연봉 누적 총액은 202억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증권업 최고 연봉기록을 세운 안재완 전무는 회사 자본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을 사고팔아 이익을 남기는 트레이딩 전문가로 알려지는데, 연봉 중 17억 원이 퇴직소득이었다. 최희문 대표이사와 같이 삼성증권 출신인 안재완 전 전무는 올해 3월 퇴직했는데, 2016년 입사한 이후 상무 재임기간은 월평균 보수의 5배, 전무 재임기간은 월평균 보수의 무려 13배를 퇴직금으로 지급(과거에도 보수 상위 5위에 퇴직 임원이 몇 차례 등장한다)받았다. 한 때 임원 보수 관련 업무를 맡았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임원 퇴직금 계산에서 재임기간 1년에 1배를 계산하는 것이 통상이고 특별한 경우 지급 배수를 절차에 따라 추가하는데, 아무리 특별한 기여를 했더라도 매해 별도 성과급을 받았을 것이므로 5배, 13배 지급 퇴직금 지급 배수는 과다하다는 생각이다. 즉 일반인이 보기에 성과급 잔치에 준하는 ‘퇴직금 잔치’라는 의혹이 들기 충분하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당근을 주고 채찍을 든 상황에서 메리츠증권은 롯데건설 자금 지원 협약에서 쉽게 이탈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의 롯데건설 자금 지원 조건이 고리대금업에 가깝다는 시장 평가에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칭찬했던 것도 자사 이익만 좇아 궁지에 몰린 롯데그룹을 외면하고 메리츠금융이 돌아서기에 부담이다. 게다가 메르츠증권의 과다한 성과급(퇴직금) 잔치와 금융감독원의 이화전기 그룹 BW 거래 조사 계획 등도 메리츠증권이 금융당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원인으로 보인다. 연초 꽃놀이 패로 알았던 롯데건설 자금 지원이 양 패로 바뀌는 난감한 형국이다. 메리츠증권이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가에 따라 금융당국이 당근을 줄지 채찍을 들이댈지 결정할 것이다. 어쩌면 염량세태에서 결국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메리츠증권이 솔로몬의 지혜를 짜낼지 아니면 계속 부동산PF 리스크가 만든 개미지옥구덩이로 끌려 들어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