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삶과 죽음을 중심축으로 흐른다. ‘인간은 결국 죽는다’라는 유한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진정한 존재 양식을 가능케 하는 죽음이라는 유한성이 동전의 한 면이라면 다른 면에서는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탄생이다. 진정한 기적과 가능성은 새로운 탄생에서 나온다. 수많은 탄생은 고유하고 개별적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복수성’이라고 불렀다. 동전의 양 면으로 표현했지만 죽음과 유한성, 탄생과 복수성은 서로를 비추는 빛과 그림자다.
무성한 잎사귀를 죄다 떨군 앙상한 나목은 초겨울의 세파에도 가지 끝에 빨간 과실 하나를 지키고 서 있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碩果不食)’라는 것인데, 그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의미한다. 석과의 씨를 새싹으로 이어주는 것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는 ‘대지(大地)’다. 자신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성찰은 대지에 뿌리를 깊게 한다. 뿌리 깊은 나무가 늘어나 숲이 되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연속성을 갖는다. 죽음과 탄생은 대지를 통해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수화(樹話) 김환기는 전통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국의 근대 모더니즘 회화를 이끌었다. 한국 추상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미 독자적 양식을 구축해 원숙기에 접어든 화가였지만, 지천명의 나이에 뉴욕으로 건너가 점(點)을 찍었다. 김환기 작품의 정점은 전면점화(全面點畵)로 추상할 수 있다. “나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이런 걸 계속해 보자”. 김환기의 작품을 관통하는 질서는 점·선·면과 색을 중심으로 새로운 화면구성을 시도한 조형성에 있다. 김환기는 그리운 고향 산천과 애달픈 마음을 조형 요소로 추상하면서 다양한 상징을 만들었다. 그중에 ‘하트’는 김환기가 마지막까지 작품 속에 녹여낸 주제이다.
김환기가 파리 체류 시절 그린 <성심>은 머나먼 타국에서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애끓는 심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붉은 심장과 그로부터 탄생한 별이 주위로 솟아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킨 대지(大地)로서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하트는 애끓는 개별의 심상이면서 동시에 대지를 뜻한다. 하트는 뉴욕으로 이어져 점(點)을 통해 개별과 전체를 동시에 겨누는 상징으로 발전한다. 점은 하나의 무엇이면서 동시에 그 무엇도 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무엇보다 김환기에게 점은 오만가지 그리움이었다.
김환기가 한국적 추상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뉴욕 생활은 가난했고 그리웠고 외로웠다. 역경 속에서 김환기는 전면점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끌어냈지만, 건강 악화로 죽음에 대한 상념을 떨칠 수 없었다. 밝음 속에 저 별들이 사라지면 자신도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었다. 김환기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린 점화 <4-VI-74 #334> 하단에는 빨간 하트가 그려져 있다. 지는 낙엽에서 하루하루 멀어져가는 인생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환기에게는 점을 찍는 몸짓은 어제의 절망 옆에 오늘의 절망을 세우고 다시 절망하는 힘으로 내일의 절망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절망을 딛지 않고 세울 수 있는 깨우침은 없을 터였다. 빨간 하트는 죽음 앞에서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의미, 즉 씨 과실을 남기겠다는 극명한 의지의 증거다.
오늘 우리는 김환기가 남긴 씨 과실이 대지로 이어져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목도하는 중이다. 김환기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분석하는 질문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느 대지 위에 서 있는가?
제겐 좀 어려운 그림이었는데 글을 읽고 나니 도움이 됩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임을 알면서도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게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