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발뒤꿈치’에 관한 오해와 이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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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발뒤꿈치’에 관한 오해와 이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뉴스웰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4.05.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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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발뒤꿈치’에 관한 오해와 이해.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발뒤꿈치’에 관한 오해와 이해.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 그는 신(神)인 어머니와 왕(王)인 인간 사이에 태어나서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출생 배경과 출중한 전투력을 가진 인물로 전해진다. 그는 트로이 전쟁의 전세를 좌지우지할 만큼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전설에 따르면 이런 팔방미인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발뒤꿈치’였다. 이 약점이 생긴 것은 그의 어머니가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발뒤꿈치를 손으로 잡아 스틱스강에 넣었다가 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발뒤꿈치에 적이 노린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리스 사람이 경외하는 전설에 불사신과 치명적 약점이라는 극한의 대립을 설정한 점은 인상 깊다. 일리아스에서 또 흥미로운 점은 아킬레우스를 바람같이 달리는 준족(駿足)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보았을 ‘제논의 패러독스’에서 거북이와 경주하는 발 빠른 사람이 바로 아킬레우스다. 그의 이러한 능력의 비밀은 다름이 아니라 발뒤꿈치에 있었다. 그의 발뒤꿈치에는 신의 날개가 이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가 강점이기도 하고 또 약점이라는 아이러니를 만든 그리스 전설이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자료 1.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구성, 뉴스웰경제연구소(무단 전재 금지)
자료 1.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구성, 뉴스웰경제연구소(무단 전재 금지)

최근 우리나라 재계에서도 고대 트로이 전쟁의 발뒤꿈치에 얽힌 아이러니가 엿보인다. 바로 재계 서열 7위인 한화그룹 승계의 핵심 키로 알려지는 한화에너지와 김동관 부회장 관련 내러티브(narrative)이다. ‘내러티브’란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실러가 주장하는 경제 이론으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전염성 있는 얘깃거리다. 자료 1에서 보는 것처럼 한화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화의 주가와 주당순자산가치(PBR)가 오랜 기간 눌려있다. 한화 주식투자자 토론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내러티브에 따르면 한화 주가 저평가의 근본 원인은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을 필두로 한 ‘3세 승계’이며, 이 역학이 한화 주가의 억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삼성물산 합병 사례에서 보듯이 지주회사인 한화 기업 가치는 저평가가 필요하고 승계자가 지분을 가진 합병 상대방 회사는 고평가해야 승계자가 저렴하게 그룹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 상대방 회사로 알려진 것이 비상장 법인 ‘한화에너지’다.

자료 2.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구성, 뉴스웰경제연구소(무단 전재 금지)
자료 2. /출처=한국거래소 자료 재구성, 뉴스웰경제연구소(무단 전재 금지)

한화 주가와는 반대로 최근까지 비상장 회사 한화에너지의 성장세를 보면 투자자의 한화그룹 승계 관련 내러티브의 확신을 키운다. 공시자료를 정리한 자료 2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해 한화에너지의 연 매출액은 줄곧 성장해 2023년 10배 이상 성장했고, 자본총계도 10년간 9배나 성장했다. 한화에너지의 이 같은 급성장은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 전략부문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한 2020년부터 두드러진다. 한화의 기업 실적을 보면 한화그룹 차원에서 비상장 기업 한화에너지의 기업 가치 키우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향후 한화에너지 상장 시에 지분 소유자는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주먹구구로 2023년 순자산 기준 PBR 0.5배 또는 PER 10배를 영업이익에 적용하면, 한화에너지 시가총액은 대략 2조원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 3. /출처=한화에너지 사업보고서
자료 3. /출처=한화에너지 사업보고서

한화에너지 지분은 한화그룹 총수 세 아들이 100% 소유하고 있다. 특히 3세 경영의 핵심 인물 김동관 부회장의 지분율이 50%에 이른다. 현 보유 지분의 원천은 한화에너지 지분을 100% 소유했던 한화S&C였으며, 초기 지분을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아들 삼 형제가 매수했다. 이 과정에서 저가 매매 논란이 있어 검찰 기소, 시민단체 손해배상 소송 등이 있었으나, 2011년 기소를 시작으로 오랜 다툼 끝에 법원은 형사, 민사 모두 총수 일가 손을 들어줘 한화그룹 총수 일가는 승계 첫 단계부터 면죄부를 받았다. 에버랜드에서 삼성물산 합병까지 아직도 이어지는 삼성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달리 한화는 승계의 첫 단추를 어렵지만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과정은 거칠 것 없었다. 장남 김동관이 경영 전면에 나서자, 본격적인 승계 행보가 이어진다. 2021년 한화S&C에서 한화에너지 지분 100%를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이 기업 분할한 뒤, 이 회사가 자회사인 한화에너지에 역흡수 합병되며 현재의 한화에너지 지분 구조를 완성했다. 순식간에 3세 승계를 위한 두 번째 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자료 4. 2023년 5월 기준 기업집단 지분도.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자료 4. 2023년 5월 기준 기업집단 지분도.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자료 4에서 확인하는 것처럼 한화에너지는 2021년 최종적으로 삼성그룹 지분을 인수한 한화임팩트(옛 한화종합화학)를 산하에 두는 등 한화그룹의 화학에너지 분야 중간 지주회사로 급성장했다. 또한 한화에너지는 한화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인수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도 계열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화에너지가 거듭되는 투자를 통해 외형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반면, 한화는 계속 주요 사업 부문 쪼개기로 성장 출력이 약화하고 있다. 즉, 지난 4월 한화그룹은 전면적인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화의 해상풍력과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으로, 태양광 사업은 한화솔루션으로 재배치하고, 2차전지 등 모멘텀 사업은 별도 회사로 독립한다. 투자자가 의심하는 내러티브의 여러 방증이 나타나고 있다.

자료 5. /출처=네이버 증권
자료 5. /출처=네이버 증권

사업구조 재편 발표 이후 기업분석가는 그저 그런 평가를 내렸고, 한화 주가는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급기야 지난 24일 한화 시가총액은 2조원 이하로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에 한화에너지의 한화 합병 시 1대 1 합병 비율이 적용되면 총수 일가 삼형제는 이론적으로 50% 이상의 한화 지분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더군다나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 매수를 늘리며 이미 9.7%를 보유했다. 총수 3세가 한화에너지 지분 확보에 투자한 돈은 약 600억원 내외(공시한 한화에너지 자본금은 677억원)로 알려지는데, 한화에너지와 한화 합병이 성사되면 합병 후 약 4조원 넘는 기업 가치를 갖는 한화 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공정 자산 총액 112조원, 재계 서열 7위의 한화그룹을 김승연 회장 지원 없이도 완벽하게 장악할 전망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현재 법적 면죄부로 장애물이 제거된 상황이어서 시간이 걸릴 뿐 거의 완성 단계로 보인다. 한화S&C 지분 저가 매수가 2011년 검찰 기소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질 때만 해도 치명적 약점이 될 줄 알았는데, 10여 년 강산이 변한 뒤에는 준족 아킬레스의 뒤꿈치처럼 강점으로 바뀐 것이다.

김동관 부회장이 처음 등장한 2010년 이후 그는 김승연 회장의 부재에도 산업 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승승장구했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주도하며 사람 목숨을 희생해 돈을 번 화약회사 이미지 탈피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과 대비되는 승계 프로세스를 완성 단계에 진입시키며 놀라운 경영가 역량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그야말로 그는 한화그룹 데뷔 이후 아킬레우스의 전투력을 보였다. 그러나 적은 돈으로 거대 재벌 그룹을 지배하게 된 기발한 승계 과정의 내러티브는 ‘금수저의 특권’을 싫어하는 일반 국민에게는 큰 위화감을 줄 수 있다. 특히 저평가된 한화 주식을 들고 있었던 투자자에게는 큰 배신감을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가 언젠가 한화의 뒤꿈치를 노리는 독화살을 쏟아부을지 궁금하다. 김동관 부회장이 여느 재벌 그룹처럼 흉내 내기가 아닌 진심으로 ESG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그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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