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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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3.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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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사회역학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더 힘들게 살아가는 힘없는 약자를 향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회역학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더 힘들게 살아가는 힘없는 약자를 향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오늘 다룰 책은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로 활동했던 저자는, 병원 전공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 소방공무원, 성소수자, 그리고 세월호 생존 학생의 건강 연구를 진행했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결혼 소송, 그리고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소송 등에서 전문가 소견서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 서점에서 ‘역학’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코너를 본 적이 있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역학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에 서가에 다가갔다. 우리말로는 하나같이 역학으로 읽지만, 한자로는 다른 세 종류의 역학이 있다. 내가 익숙한 양자역학의 역학은 ‘力學’이고, 사주와 팔자에 관련된 역학은 ‘易學’이며, 질병의 원인을 인구 집단의 데이터를 이용해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김승섭 교수의 연구 분야인 역학은 ‘疫學’이다. 서점 ‘역학’ 코너의 많은 책은 셋 중 어느 역학에 대한 것이었을까? 독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바로 易學이다. 엄연한 과학 분야인 力學이나 疫學보다, 전혀 근거가 없고 과학도 아닌 易學에 사람들의 관심이 훨씬 더 크다. 안타까운 일이다.

역학 분야의 고전적인 연구가 있다.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는 1854년 런던에서 유행한 콜레라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원인을 살펴보고자 했다. 환자가 발생한 위치를 런던의 지도 위에 여러 점으로 표시해 보고는 런던을 가로질러 흐르는 템스강에서 끌어온 물을 상수도로 공급하는 특정 지역 펌프 주변에서 콜레라 발생 사례가 많이 분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콜레라 감염 확산의 원인이 바로 오염된 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역학은 이처럼 질병의 원인을 인구 집단의 데이터를 이용해 찾아내는 중요한 학문 분야다.

김승섭 교수의 전공 분야는 역학 중에서도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인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바로 사회역학이라고 할 수 있다. 콜레라가 특정 상수도 펌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데이터로 규명하는 것이 역학자의 역할이라면, 사회역학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들이 왜 이 펌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의 원인, 질병의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을 추적한다. 사회역학의 치밀한 연구가 명확히 밝힌 사실이 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이에게 고르게 분포하지 않아서, 차별을 겪는 이들,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아프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추적하는 사회역학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더 힘들게 살아가는 힘없는 약자를 향한다.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하지만, 차별을 경험하는 것과 그 경험을 스스로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다르다. 차별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 설문에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 노동자는 ‘차별이 있었음’이라고 답한 이들보다 오히려 건강이 위험했고, 학교 폭력을 겪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이 ‘학교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라고 답한 이들보다 우울증이 오히려 더 심각했다. 차별과 학교 폭력을 경험하는 것과, 그 경험을 스스로 인지하고 보고하는 것은 다르다. 차별과 학교 폭력을 경험했지만 스스로 그 경험을 애써 부인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한 이들이 더 아프다는 결론이다. 어떤 고통은 경험되었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고통마저 애써 부인하는 이들이 더 아프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 선택권에 관련된 정말 어려운 문제다. 낙태 금지법의 찬반을 떠나 저자가 소개한 과거 루마니아의 사례는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다. 1966년 루마니아는 출산율 감소의 위기가 닥치자 강력한 낙태 금지법을 시행한다. 이 법이 시행된 직후 4년간 출산율이 2배 증가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루마니아에서 벌어진 일은 처참했다. 의사의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게 된 어려운 처지의 여성은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해 많은 이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인근 국가인 불가리아나 체코에 비해서 모성 사망비가 무려 9배에 이르게 된다. 법 시행 후 태어난 많은 아이도 행복한 삶을 살기는 힘들었다. 루마니아의 고아 숫자가 급증하게 된다. 게다가 낙태 금지법은 장기적인 효과도 없어서 법 시행 후 4년이 지난 후에는 다시 출산율이 감소했다. 결국 루마니아의 강력한 낙태 금지법은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고아를 늘렸을 뿐, 장기적인 출산률 증가의 효과도 없었다는 결론이다. 왜 어떤 여성은 낙태를 선택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면 강력한 낙태 금지법은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사진=동아시아출판사
/사진=동아시아출판사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이가 고통을 겪고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우리나라에 있었다. 세정의 용도로는 별 위험 없이 사용되던 화학물질을 가습기 살균의 용도로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공기 중에 뿌려진 이 살균제를 사람이 호흡으로 흡입했을 때, 과연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엄청난 양의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었고, 제조업자에게는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을 확인할 아무런 법적 의무가 없었다. 새로 개발된 화학물질의 경우, 위험성을 유의미하게 판정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위험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은 없다는 것을 근거로 판매가 시작된다면, 많은 이가 죽고 병든 다음에야 위험성을 유의미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여러 사람이 죽고 병들고 나서야 위험 화학물질 판매가 중단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당연히 가능하다. 바로 ‘사전 주의 원칙’이다. 독성 정보가 없는 화학물질의 사용과 판매를 금지하고, 독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의무는 이 물질의 사용과 판매로 이득을 보는 기업에 지우는 방식이다. 즉 ‘안전하다고 확인되기 전에는 일단 위험하다고 간주한다’라는 중요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하다는 증거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사용과 판매를 허락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위험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판매를 허락하면 많은 이가 죽고 병든 다음에야 판매가 중단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식이다.

동성애가 질병이며 치료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폭력적 주장은 의학계에서는 오래전 반박되어 더 이상 논쟁조차 되지 않는 내용이라고 책은 전한다. 이미 반세기 이전인 1970년대 초부터 미국 정신의학회의 명확한 입장이다. 게다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일부의 그릇된 시도는 실패했을 뿐 아니라,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동성애자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1976년부터 동성애 전환 치료를 오랜 기간 주도한 미국의 단체는 2013년 그동안의 과오에 대한 사과문을 공식 발표하며 스스로 해산했다.

동성애가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의 주범이라는 비과학적 낙인도 문제다. 현재 HIV·AIDS는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며,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질환일 뿐이다. 동성애와 AIDS의 관계를 고령자와 대장암의 관계에 비교한 저자의 설명이 인상 깊다. 고령과 흡연은 대장암의 대표적 위험 요인이다. 물론, 대장암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담배를 끊도록 독려하는 것은 의미 있는 해결책이다. 하지만, 고령자가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나이를 줄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지역의 모성 사망비가 서울보다 높다고 해서 그곳의 임산부를 서울로 이주시킬 수는 없다는 것도 같은 이야기다. 마찬가지다. AIDS 감염을 피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개인적 성적 취향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AIDS 환자에 대한 거부감이 특히 강한 나라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동성애자들은 온갖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 개인의 성적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 소수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야만이다. 우리나라에서 차별 금지법은 벌써 17년째 여전히 국회를 통과해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저자는 젊어서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며 고민했다고 한다. 저자는 여전히 이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있다. 저자가 뿌린 씨앗이 꽃이 되고, 큰 나무가 되길 기원한다. 그 아래에서 우리 모두 서로 미워하고 차별하지 않기를, 그래서 모두가 더 건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아래에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소수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가 필요한 건 여러분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사회역학은 원인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라는 저자는 말합니다. 그 의미를 설명해 보세요.

2. 재난과 위험은 딱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기 어려워서, 서로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연결된 원인의 그물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큰 재난의 예를 하나 들고, 그 재난을 일으킨 원인의 그물망을 자아낸 거미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3. 책 제목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의미를 설명해 보세요. 누구의 아픔과 누가 걸어갈 길을 뜻하는 것일까요?

4. 그래도 어떤 변호사는, 그리고 어떤 학자는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변호사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우리 대부분은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편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5.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며 치료의 대상도 아니라고 책은 말합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6.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차별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별 금지법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두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7. 저자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으며,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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