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과학자는 누구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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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과학자는 누구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5.2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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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의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집대성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200년 정도 앞선 때가 아낙시만드로스가 활동했던 시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집대성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200년 정도 앞선 때가 아낙시만드로스가 활동했던 시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양자 중력 이론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등의 책으로 물리학의 심오한 주제를 대중에게 소개한 저자는 이 책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를 통해서 놀라운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을 소개하며 과학의 태동기를 되짚어 본다. 인간의 아름다운 지적 활동으로서의 과학의 가치와 의미도 담담히 들려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남긴 호메로스 약 2세기 후, <신들의 계보>를 쓴 헤시오도스 약 1세기 후에 활동했다. 이오니아 지방의 해안 도시 밀레토스에서 탈레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기도 하다. 사모스에서 활동하던 피타고라스가 아낙시만드로스를 만나려 밀레토스를 방문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집대성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200년 정도 앞선 때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피타고라스가 함께 활동했던 시대다. 고대 그리스 최초로 산문의 형식으로 저술된 <자연에 관하여>는 안타깝게도 후대로 전해지지 못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여러 글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놀라운 업적은 여럿이다. 태양의 힘으로 땅에서 올라간 수증기에서 비가 내린다고 주장해서 인류 최초로 지구의 물 순환을 생각한 이도 아낙시만드로스다. 당대의 거의 모든 사람은 자연의 여러 현상이 신의 의도와 행위의 반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연현상의 근원을 자연 자체에서 찾았다. 현대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주의적 사고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아낙시만드로스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주의 허공에 유한한 크기의 지구가 놓여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밤하늘에서 땅 아래로 져서 사라진 별자리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지구의 아래가 빈 허공이어야 한다는 것을 추론한 것으로 보인다. 허공에 가만히 머물고 있는 지구에서 본 우주의 모든 방향은 동등해서 굳이 특정 방향으로 지구가 움직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했다. 대부분의 오랜 문명에서는 머리 위 하늘과 발아래 땅으로, 세상이 위와 아래의 방향으로 명확히 나뉜다고 믿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위와 아래의 개념은 상대적일 뿐이며 땅(지구)은 아래로 떨어질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계는 우리가 과거에 믿던 것과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 세상은 겉으로 보는 모습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낙시만드로스가 시작한 과학의 길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코페르니쿠스는 겉보기와 달리 태양 주위를 돌면서 스스로 자전하는 지구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했고,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오랜 익숙한 경험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꿨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모양을 바꾼 첫 번째 과학자다.

다양한 사물의 유일한 근원(아르케)으로 탈레스는 물을 주장했다. 그의 젊은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질적으로 다른 세상의 모든 사물의 근원이 특정한 규정성을 가진 물이 될 수는 없으며, 한계가 없고 규정될 수 없는 무언가가 세상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이다. 저자 로벨리는 아페이론과 현대 물리학의 여러 이론적 구성물을 비교한다. 전자기장, 양자장, 쿼크, 가상입자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연의 이론적 구성요소가 존재한다고 가정한 첫 번째 과학자가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얘기다.

/사진=푸른지식
/사진=푸른지식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의 변화가 필연성에 따라 이뤄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상이 전개되는 것을 결정하는 필연성에 따라 이뤄진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결정하는 필연성은 이후 뉴턴 물리학의 동역학적 자연법칙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자연법칙의 필연성이 자연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한 이가 아낙시만드로스다.

자연을 자연 자체로 설명하는 자연주의적 사고,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를 수 있다는 관념,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적 구성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자연법칙의 존재. 아낙시만드로스가 시작한 과학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과학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과학혁명은 아낙시만드로스와 함께 시작했다. 그는 모든 과학적 사고의 아버지다.

첫 번째 과학자라고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놀라운 성취를 소개한 저자 로벨리는 이어서 과학적 사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세상의 일원론적 근원 요소가 존재한다는 스승 탈레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발전적으로 비판해 물이 아닌 아페이론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스승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도, 스승의 발자취를 모두 지워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가 시작한 계승과 비판의 제3의 길은 과학의 긴 역사에서 자주 목격되는 일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당대 천문학을 주도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충실한 계승자이자 비판자였고,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로 뉴턴을 계승하면서 극복한 사람이다. 과거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스승의 길을 새로이 이어가는, 좁은 제 3의 길을 처음 걸은 이가 아낙시만드로스다.

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의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당대의 독특한 이오니아 지방의 사회, 문화적 환경도 크게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동서로 연결하며 남쪽과도 상업적인 교류를 왕성하게 이어갔던 전성기의 그리스 지역은 여러 문명과의 교류로 군주의 신성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된 곳이다. 제우스를 주신이라고 주장하는 문명과 마르두크가 주신이라고 주장하는 문명의 만남으로, 내가 맞고 네가 틀려서 둘 중 하나가 진실일 필요 없이, 둘 다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의심이 싹틀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민주주의와 음성언어와 합응하는 문자 체계가 등장해 지식의 대중화와 활발한 토론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던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과학과 민주주의는 함께 쌍생성한 셈이다. 저자는 역사가 헤카타이오스가 이집트 사제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카타이오스는 자신의 집안에서 16대 선조 중 하나가 신의 자식이라고 이집트의 대사제에게 뽐낸다. 그러자 대사제는 신전에 대를 이어 보관된 363개의 선조 대사제의 목상들을 묵묵히 보여준다. 저자는 그리스의 비판적, 과학적 정신이 깨어난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이집트 테베의 거대한 신전 안쪽 컴컴한 방에서 이루어진 이 만남이라고 얘기한다. 스스로의 오랜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가 바로 과학적 정신이 탄생하는 순간이라는 얘기다.

저자의 글솜씨도 참 좋다. 저자는 과학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나 헬레니즘 철학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브가 사과를 따던 순간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벌을 준 것을 보면 성경의 신이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지식을 향한 욕구가 과학을 탄생시켰다는 얘기다. 실용성의 측면에서 과학을 비판하는 것에도 저자는 반대하며 이를 시 쓸 때 사용하는 볼펜으로 시인을 판단하는 것에 비유한다. 과학은 실용적 도구의 역할을 훌쩍 뛰어넘으며,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다. 과학 지식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에 주목해서 현재의 과학이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주장에도 저자는 비유로 답변을 들려준다. 우리 인간은 여전히 낯선 도시에 있는 이방인이다. 더 나은 도시의 지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가진 현재의 지도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다. 과학은 제시하는 대답이 확정적이어서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의 한순간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가장 나은 대답이어서 믿을 만한 것이다. 오히려 과학의 힘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 저자는 인간의 지적 활동 중 과학만큼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는 동시에 앞을 내다보고자 하는 열정에 불타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과학은 인간이 떠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험 가운데 하나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나와 다른 타자를 인식하고 용인하는 것은 물론 올바르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견이 똑같은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신에게 소녀를 바치는 인신 공양이 한때 정당하다고 여겨졌다고 해서, 현재 이러한 행위를 야만으로 여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화 상대주의의 반대쪽 극단에 놓인 절대적인 진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종교계의 주장에도 저자는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것도 절대적인 진리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둘 사이의 좁은 제 3의 길을 걸어가자고 권유한다. 존중하되 의심하고, 더 나은 이해를 항해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고 속삭인다.

종교의 기원에 대한 여러 학자의 주장을 소개한 다음에 이어지는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아침마다 고요히 노래 부르며 아름다운 세상에 감사 못 할 이유는 없다. 비이성주의를 거부해도 손바닥으로 나무를 만지며 그 고요한 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말라는 법도 없다. … 우리의 무지를 깨닫고 받아들이자. 무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식을 향한 지름길일 뿐 아니라 가장 정직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취약하고 텅 빈 것처럼 느낀다 하더라도 삶은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소중해진다. 계속 나아가자.”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혹시 이전에 아낙시만드로스를 들어보셨나요? 많은 이에게 낯선 그리스 사람 아낙시만드로스를 저자는 최초의 과학자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2. 과학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세요. 과학적 사고방식이 과학 이외의 모든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3. 수학으로 기술되지 않고 실험 결과와 비교하지도 않는 아낙시만드로스의 과학도 현대 물리학과 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학화는 과학의 필수적인 조건일까요? 실험은 어떨까요?

4. 이오니아 지역의 무역항 밀레토스의 어떤 사회 문화적 환경이 최초의 과학이 시작되는 데 이바지했을까요?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더욱 발전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5. 저자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개념과 ‘공약 불가능성’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고,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6. 저자가 소개하는 종교의 발생을 설명하는 주장 중 여러분은 어떤 것에 동의하시나요? 종교와 과학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7. 문화 상대주의 관점과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두 관점에 저자는 모두 반대합니다. 그렇다면 주장하는 진리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8. 과학자들은 과학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확실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9. “과학은 인간이 떠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처럼 과학에 관련된 멋진 문장이 책에 참 많아요. 여러분이 꼽은 멋진 문장을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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