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극우 세력들이 혐오하던 제21대 이재명 대통령이 천신만고 끝에 임기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친위 계엄을 목격하고도 보수라 자처하는 각계각층 인사가 이를 옹호하거나 묵인하는 것으로 일관했는데, 경제학으로 밥 먹고 사는 무리{이하 경제가(家)} 상당수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이들 무리에서 가장 주목할 사람들은 이른바 ‘F4’라 불리는, 회의록도 남기지 않은 비공식 회의체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계엄 관련 국무회의 직후 즉시 경제부총리 소집으로 비상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과의 관련성과 이들 역할을 놓고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혹이 큰 가운데, 경제부총리와 금융감독원장은 퇴임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정권 교체 직후인 지난 5일, 뜬금없이 한국경제에 대한 걱정거리를 덜겠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바로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다. ‘1990년 이후 일본경제의 침체’라는 주제는 잃어버린 10년, 20년 심지어 30년까지 제목을 갈아가며 오랫동안 ‘불황’에 관심 있는 경제학자들의 단골 연구 과제였다. 그러나 ‘친일’ 청산을 여러 차례 강조한 신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내놓은, 하필 ‘일본’에서 배우자는 한국은행 보고서이기에 필자는 그 의도에 주목한다.
일본경제 장기 침체는 세계 경제패권을 눈앞에 둔 한 국가가 침몰한 사건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가장 충격적인 불황으로 여겨지며, 서로 다른 수많은 관점에서 경제학자가 관찰한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관련 보고서나 논문을 들여다보고는 했었다. 필자가 아는 한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일본 침체를 초래한 공통적 원인은 ▲첫째 일본의 경제성장에 대한 과신과 이에 대응한 미국의 일본 패권 견제 심리 팽배 ▲둘째 급격하고 파격적인 달러 환율 약세를 강제로 유도한 1985년 플라자 합의 ▲셋째는 이후 일본 금융 당국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이었다. 이것들은 ‘일본 정체’가 발생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5쪽에 이르는 국내외 문헌을 참고하며 내린 결론은 부채누증, 저출산·고령화, 글로벌 산업구조 변화가 일본경제 장기 침체 배경이며, 일본 정부가 이미 이러한 변화는 인식했으나 ‘처음 당하므로 변화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었다’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재정 여력 소진과 통화정책 효과 제약으로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결론을 일본경제 침체 교훈으로 설정하고 한국경제 침체에 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계부채, 저출산·고령화 문제(또한 트럼프 관세 전쟁과 첨단 기술 전쟁 등 글로벌 산업 구조 변화도 일본 사례와 유사)를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부각했다. 한국경제 민간 부문 특히 가계부채 증가와 노동력 약화 속도가 30년 가까운 장기 침체를 가져온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필자가 한국은행 보고서에서 받은 인상을 요약하면 결국 한국경제 침체의 원인은 ‘국민’의 무능력이거나 비효율적 행태이며, 가계 부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재정 파탄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무용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온 배경은 한국경제 성장률의 추락이다. 지난달 한국은행 경제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은 2월 전망에 비해 반토막 하락한 0.8% 수준이다. 또한 2025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지난 분기 대비 마이너스 0.2%, 전년 동기 대비 0%를 각각 기록하며 ‘추세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이 구조화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공포가 경제가(家) 주변에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면 경제가(家)는 우선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이 망가진 것 아닌가를 의심한다. 잠재성장률은 현재 한 국가 경제가 가진 노동, 자본 등 자원을 모두 동원해 달성할 성장 수준이며 물가 상승이 따르지 않는 성장 개념이다.
뉴턴의 미분법을 활용해 경제 방정식의 최적해를 찾고, 통계 패키지를 통해 경제를 읽는 미국식 경제학 관점에서 성장이란 기본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함수이며, 이 성장 함수 결과치의 층위(層位)를 불연속적으로 바꾸는 것이 함수에 포함한 상수(常數)이다. 이 상수를 총요소생산성으로 부르며, 농업혁명, 산업혁명, 전기 발견 등의 기술적 혁신이 대표적이다. 같은 노동과 자본의 양에도 상수 크기에 따라 결과는 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은 경제성장 침체 원인으로 이 노동생산력에 주목한 것이다.
한국은행과 같은 ‘화폐 금융’ 전문가는 당연히 통화주의(monetarism) 시조인 밀턴 프리드먼을 따르므로 신자유주의적 시각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러한 역사, 공정을 배제하고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관점에서 한국은행은 노동의 안정성보다는 화폐 가치 안정이 최우선이므로 가계부채 해결 과정의 국민 고통은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있다. 그저 한국은행은 그들이 관장하는 금융시스템 안정이 최우선 목표일 것이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같은 성장률 침체를 놓고 한국은행과 조금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KDI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영향으로 인한 잠재성장률 침체 추세를 개선하려면 우선 ‘경제 구조개혁’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개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출생률 하락 완화와 여성·고령층 등 유휴 노동력 투입 증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국은행과는 달리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두는 KDI는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는 케인주의(Keynsian) 색채와 견해가 그들 분석에 반영할 수 있다.
과거 일본의 침체는 정부의 외교와 경제 정책 실패가 초래한 인재(人災)였음은 이미 다수 분석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주장한 부채와 인구 문제는 일본경제 침체를 악화한 충분조건이며 이것조차 정부의 금융과 인구 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은행이 가장 시급한 골칫거리로 주목한 한국 가계부채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부가 부담할 경기 침체 부담을 상당 부분 국민에 전가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가계부채 증가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현상만 강조하면 한국 국민은 저 혼자 먹고살려 부채를 과도 소비한 부도덕한 국민으로 취급받는다. 부채 부당 증가 원인과 부채의 소비침체 효과 등을 함께 고려하면 가계부채 구조조정은 정부부채로 일정 부분 옮기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필자는 소득 순위 하위부터 장기국채를 발행해 가계대출 금융회사에 인수시키고 개인 채무는 국가가 장기 관리하는 방법으로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주고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편견이겠지만 한국은행 소속 경제전문가는 이른바 ‘경제 기술자’(econocrat)로 국민보다는 조직의 성과와 안위를 목표로 움직일 확률이 높다. 새로운 정부는 이들을 견제하고 늘 강조한 대선 공약처럼 항상 국민 처지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