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금융감독원이 강력한 의지로 추진하던 ‘주식시장 밸류업’ 소동 후폭풍에 삼성그룹이 시끄럽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선언한 자사주 10조원 소각 선언 이후 올해 2월 3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다른 기업에는 언뜻 단순한 주주환원 이슈인 자사주 소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보험소비자를 악용한 흑역사와 정부와 사법적 비호가 얽혀 수십년간 쌓인 엔트로피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되자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5억800만주를 5442억원에 사들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유배당보험상품 계약자의 보험료였다. 이후 삼성그룹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기반으로 이재용 회장이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배구조 유지에는 보험업법과 <금융회사의지배구조에관한 법률>(금산법)에 근거한 다른 회사 지분 제한과 보유주식 평가방법이 관련되어 있다. 정경유착의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 지분과 관련한 이슈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전화에서 성공을 거듭하며 기업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불거졌다. 그 첫째 이유는 유배당보험상품 취지대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평가차익 등을 배당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금산법과 보험업법의 ‘타 회사 지분에 시가 반영’ 논란이다. 이 두 가지 이슈의 바탕에는 삼성 지배구조 유지가 자리하고 있다. 삼성그룹 지배주주는 삼성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삼성전자 지분율은 견고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삼성 지배주주의 이익을 생각하면 삼성생명의 경영진은 보험 고객의 이익을 생각할 틈이 없을 것이다.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 계약자에 대한 배당을 거부하는 논리는 첫째 삼성전자 지분은 팔지 않을 것이므로 시가 평가 적용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며, 삼성전자 주식의 실현하지 않은 평가 이익을 배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배당보험상품이 이미 7% 고율의 배당률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이어서 저금리 영향으로 오랫동안 삼성생명이 손실 보전을 해왔으므로 총 손익 관점에서 지급할 배당금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삼성생명의 주장은 ‘일탈 회계’라는 회계기준의 특혜로 제도적 뒷받침을 얻고 있다. 마치 삼성 지배구조 보호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 사법 시스템이 힘을 합친 결과라는 생각이다. 2010년 삼성생명이 상장을 앞두고 유배당보험 고객이 제기한 소송전이 벌어졌으나 법원은 삼성의 논리에 손을 들어줬다. 결국, 금융당국은 유배당보험 계약자분의 삼성전자 평가 이익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회계 항목을 고안해 보험부채와 별도로 부채 항목에 표기하도록 했다. 미래 어느 시점에 유배당보험 계약자에 지급할 가능성이 있는 평가 이익을 현재 지급은 유예하지만, 회계상 표기는 해두자는 의도였다. 이는 현재 책임을 미래로 유예하는 무책임한 짓 아닐까? 또한, 2022년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IFRS17 도입을 앞두고도 금융당국은 ‘계약자지분조정’ 분류 표기를 계속 허용했다.
과거 여러 사법처리와 정부 행태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정부와 사법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지키기에 앞장서서 나선다는 의혹이 있다. 일반 기업에는 허용되지 않는 이러한 특혜가 삼성그룹에는 이어졌고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는 그 대표적 사례라는 평가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일탈 회계’ 논리는 의외의 곳에서 무너졌다. 다름 아닌 삼성전자 스스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논리를 흠집 내고 말았다. 앞서 밝힌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오만전자’라는 오명으로 주가 관리가 절실한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자 발행 주식 수가 줄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 합계가 10%를 넘었고, 초과지분 정리를 위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2746억원을 팔았다. 즉, 삼성생명이 절대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세운 논리를 삼성전자가 훼손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이를 놓고 한 시사평론가는 과거 삼성그룹 전체 전략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마디로 지금 삼성그룹은 ‘똥인지 된장인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회계원칙은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고객 보험료로 취득하고 운용한 자산은 ‘보험부채’로 표시해 시가 평가를 적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최근 취임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 같은 원칙대로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를 정상화할 것이라는 소신을 지난 1일 밝혔다. 또한, 기업회계기준을 제시하는 ‘한국회계기준원’이 삼성생명 회계를 국제회계기준에 맞출 것을 담은 적용의견서를 11월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 정리에 반대하며 일제히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마디로 삼성전자 지배구조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수십년 이어온 한국 경제에서의 삼성그룹 히스토리를 볼 때 이번에도 삼성그룹 의도대로 흘러갈 확률이 높다. 그 서사에는 인맥과 관계, 영향력이 있다. 이러한 힘이 오랫동안 한국 경제와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공화국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