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리학자의 일상>은 약 100년 전 살았던 일본 물리학자 데리다 도라히코(1878~1935)의 수필집이다. 만원 전차를 피해 여유 있게 좌석에 앉을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전차 혼잡에 대해>를 읽으며 물리학자의 합리적 사고방식에 감탄할 수도, 병으로 일찍 죽은 아내가 도토리 줍던 모습을 회상하는 <도토리>를 읽으며 저자의 처연한 슬픔을 가슴 아프게 느낄 수도 있다. 물리학자와 문필가의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여러 단편 수필이 수록된 좋은 책이다.
현대 일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재밌는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간게쓰라는 이름의 물리학자가 등장한다. 사형수 여럿을 한 번에 교수형 할 때의 밧줄 장력을 계산하고 박사 논문 주제가 <개구리 안구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인 이 괴짜 물리학자의 실제 모델이 고등학생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이 책의 저자 데리다 도라히코다. 일본 최초의 글 잘 쓰는 물리학자인 셈이다.
<도토리>는 저자의 젊은 아내가 결핵으로 죽고 나서 3년의 세월이 흐른 1905년 수필이다. 젊은 아내의 순수한 마음과 병색이 짙은 아내를 바라보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잘 표현된 뛰어난 작품이다. 아이처럼 도토리를 잔뜩 줍던 아내가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고 적은 저자는 문단을 바꿔 바로 이어서 “도토리를 주우며 기뻐하던 아내는 이제 없다. 무덤가에는 이끼꽃이 몇 번인가 폈다”로 글을 이어간다. 아내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두 줄 사이에 놓인 6년의 시간이 먹먹하다. 행간에 담긴, 아니 도저히 행간에조차 담길 수 없는 저자의 슬픔이 극도로 감정을 절제한 문장으로 아름답게 드러난다. <용설란>의 마지막 부분은 또 이렇다. “요시군은 훌륭하게 잘 컸지만 용설란은 이제 없다. 천둥이 그쳤으니 내일은 맑으리라”. 저자의 건조한 문체가 묘하게 감동스럽다. <도토리>와 <용설란>을 읽으며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t simpler.”(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단순해서는 안 된다.)가 떠올랐다. 줄이고 줄여서 더 줄일 수 없을 때까지 줄이는 것이 물리학의 방식이다. 물리학은 가벼운 깃털 하나를 덜어내도 무너져 내리는 극도로 단순한 구조를 지향한다. 물리학자인 저자의 글이 물리학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쥣빛 재생지>는 구체적인 일상 경험에서 출발해 사고를 확장하는 저자의 작법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편이다. 갱지라고 불리는 질 나쁜 재생 종이를 나도 어려서 자주 썼다. 연필 글씨가 잘 써지지 않을뿐더러 잘못 쓴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다 보면 종이가 찢겨 무척 불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자가 쓴 쥣빛 재생지는 훨씬 더 조악하다. 심지어 만들 때 사용한 원 종이 인쇄물의 글씨와 제조 과정에서 거르지 못해 들어간 머리카락도 보일 정도다. 그런데 재생지 품질 불만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별의별 원재료가 함께 모여 새롭게 탄생한 재생지를 바라보며 저자의 생각은 넓게 확장되어 새롭게 펼쳐진다. 재생지로부터 출발한 저자는 가치 있는 독창은 남과 다르다는 뜻이 아니며 최고의 천재는 가장 부채가 많은 사람이라는 에머슨의 말을 떠올린다. 또, 사람들은 만나는 모든 이에게서 배우고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무수한 물건 덕분에 풍요로워진다는 러스킨의 말도 떠올린다. 재생지에서 뻗어 나가는 저자의 통찰이 경이롭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이 세상의 새로운 것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출현한다. 각각의 재료가 새롭지 않아도 재료가 모인 전체는 얼마든지 새로울 수 있다. 단편의 쥣빛 재생지처럼 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이의 온갖 일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이룬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이 있다면 우리 앞에 있던 모든 이가 힘쓴 덕이다.
<잔디 깎기>도 재밌게 읽었다. 방동사니와 왕바랭이라는 풀을 가지고 하는 아이들 놀이가 글에 있어 찾아보니 이름은 몰랐지만 나도 어려서 가지고 놀던 익숙한 풀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를 마친 모든 아이는 어떻게든 심심함을 해결하려 급급했다. 왜 그리 해는 긴지, 친구 엄마가 빨리 들어와 밥 먹으라고 한 친구를 부를 때까지 동네 아이들은 함께 모여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려 온갖 놀이를 만들어내며 놀았다. 토끼풀 반지와 버들피리도 기억나고, 누구 풀이 더 강한지 겨루는 풀싸움, 끝만 조금 남긴 강아지풀로 하는 개구리 낚시도 떠오른다. <잔디 깎기>에서 저자는 잔디와 머리를 깎을 때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가 우리 귀에 유쾌하게 들리며 아마도 이는 우리 선조 유인원 시대부터 이어진 감각의 기억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현대 진화심리학의 관점이 떠올라 반가웠다. 잔디 깎기와 관련된 재밌는 얘기를 가볍게 이어가던 저자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깎지 않고 방치한 잔디밭처럼 지나치게 번성한 물질문화 때문에 인간 생활의 근본이 썩어가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이를 구제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 문명을 좀 도려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곧이어 잔디와 인간 문화가 아무런 관계가 있을 리 없으니,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잔디에서 문화로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피상적이고 경솔한 유추라며 스스로를 바로 잡는다. 나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 ‘솥발 정(鼎)’이 들어가는 한자어 정립(鼎立)의 유래를 선생님께 들었다. 한 직선 위에 놓이지 않은 임의의 세 점을 포함하는 평면은 삼차원 공간에서 딱 하나라는 수학적인 진리로부터 솥의 발이 셋이면 기우뚱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과학적인 사실로부터 천하에 세 나라가 함께 있는 것이 힘의 균형을 이뤄 안정적이라는 확장된 뜻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립(鼎立)’의 유래다. 유명한 중국의 삼국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 얘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자와 같은 고민을 했다. 실제로 세 나라가 공존할 때 천하가 안정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근거를 솥발의 숫자에서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간이 흘러 이 얘기가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판단으로부터 당위나 가치 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오류다.
<축음기>와 <영화 시대>는 저자가 경험한 20세기 초 신문물에 대한 얘기다. 어려서 경험한 신기함은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별것 아닌 것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접했을 때의 생생한 감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를 1에서 10을 보면 10배지만, 100에서 10을 보면 10분의 1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딱 물리학자답게 설명한다. 어려서 종이컵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고 성냥개비를 묶은 실을 매달아 멀찌감치서 팽팽히 당기고는 친구와 순서를 바꿔가며 소곤소곤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느낀 어린 시절 신기함의 감흥은 처음 무선 휴대폰이 나왔을 때보다 훨씬 더 컸다. <영화 시대>에서 저자는 당시에 막 등장한 흑백 영화를 본 경험을 소개한다. 저자가 보고 글에서 소개한 당시의 영화 대부분의 동영상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영화 장면은 지금 봐도 상당히 놀라워서, 100년 전 저자가 처음 봤을 때의 경이감을 어느 정도 떠올려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 시대>에는 미국과 독일의 문화를 비교하는 부분도 등장한다. “미국에서 재즈 음악과 난센스 영화가 유행한다는 사실은 그 나라의 철학과 과학과 예술의 부진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독일에서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 것은 독일인이 (미국인과 달리) 만사 오케이 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 글이 쓰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추축국의 일원으로 독일과 한편이 되어 참전한다. 미국과 독일에 대한 저자의 다른 평가가 일본의 미래에 대한 복선처럼 읽혔다.
<과학자와 예술가>에는 둘 사이의 공통점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잘 담겨있다. 저자는 과학자면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일부 예술가는 과학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반감마저 품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과학과 예술이 의외로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둘 모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 활동을 중요시한다. 타인의 예술을 그대로 모방하면 예술가가 아니듯, 타인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면 과학자가 아니다. 둘 사이의 공통점에는 실용적 가치를 떠나 몰입한다는 것도 있다. 예술가처럼 과학자도 미적 쾌락을 즐긴다는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나도 고개를 크게 끄덕인 문장을 소개한다. “얼핏 봐서는 어려운 천체 운동이 간단한 중력 법칙에 따라 정연하게 한데 묶인다는 사실을 뉴턴이 알아챈 순간, 볼테르가 노래했듯 신의 목소리와 함께 혼돈이 사라지고 어둠에 숨어 있던 자연의 속마음은 장막을 열고 영롱한 천계를 눈앞에 드러냈다”. 모든 과학자는 안개 속에 있듯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투명해지면서 “아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것이었구나”하는 직관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고통스러운 긴 고민 끝에 불현듯 찾아오는 이때의 느낌은 저자의 말처럼 미적인 아름다움과 정말 비슷하면서 강렬하다. 양자 역학을 처음 체계적으로 완성한 하이젠베르크의 ‘헬골란트의 밤’, 자신 철학의 첫 번째 원리를 떠올린 데카르트의 ‘난롯방의 사색’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아, 물론 아르키메데스의 나체 질주도.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양자 역학을 처음 완성한 것이 1925년 무렵이다. 이보다 앞선 1917년에 쓰인 <물리학과 감각>은 물리학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인 입장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시각이라는 감각이 없는 세상의 물리학은 어떤 모습일지 물으며 글을 시작한다. 체계를 제대로 갖추었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것과는 다른 물리학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저자가 상상한 세상이 바로 <프로젝트 헤일 메리>에 그려진다. 이 소설과 영화를 본 독자라면 우리와 다르지만, 체계적인 과학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세계의 인간이 전멸해도 천연의 사물과 현상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가정이야말로 물리학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라고 적은 저자는 따라서 모든 물리학자는 미숙한 실재론자라고 말한다. ‘미숙한’이 붙은 이유는 주관과 독립된 외부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이 쓰인 무렵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다. 감각에 포착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마흐는 바로 그 이유로 원자가 실재한다는 것도 강하게 거부했다. 마흐의 강한 주장과 달리 현대의 물리학은 직접 감각할 수 없는 물리적 실체도 얼마든지 실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데리다 도라히코의 생각은 마흐와 비슷하다. 인간에게 직접 주어지는 실재는 감각뿐이며, 이는 외계와 주관 사이의 현상일 뿐,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는 말한다. 이처럼 물리학과 감각의 관계를 중시하는 저자는 글에서 “경험에 기반한 양자 역학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한다. 실제로도 1925년 양자역학을 완성한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이 바로 저자와 같다. 측정이 가능한 물리량만을 이용한 하이젠베르크 양자 역학의 출현을 저자가 예견한 듯해 신기했다.
<전차 혼잡에 대해>는 혼잡한 전차를 피해 여유 있는 전차에 탑승해 편하게 좌석에 앉아 출근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을 다룬 재밌는 글이다. 얼마 전 하시모토 고지의 <나는 물리학으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가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었다. 데리다 도라히코의 <어느 물리학자의 일상>의 계보를 잇는 일본 물리학자의 수필집인 이 책에도 도라히코의 전차 혼잡 문제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어쩌다 버스가 늦어져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진 상황을 떠올려보자. 지금 막 도착한 버스가 많은 승객을 태우다 보면 출발시간이 늦어져 다음 정류장에는 더 늦어진 시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더 늘어난 승객을 태우게 되니 그 정류장의 출발시간은 또 더 늦어진다. 버스가 늦어지면 다음 정류장에서는 더 늦어지게 되는 일종의 양의 되먹임이 발생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혼잡한 버스 바로 다음에 오는 버스는 어떨까? 방금 앞 버스가 많은 승객을 태우고 갔으니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적어 출발시간이 빨라진다. 이 차의 승객수도 마찬가지로 양의 되먹임을 보여준다. 이 정류장에서 빨리 출발했으니 다음 정류장에 일찍 도착하고, 기다리는 승객이 적어 더 빨리 출발하니 그다음의 정류장에는 더더욱 빨리 도착한다. 결국 만원 버스 다음에는 앉을 자리가 많이 남아있는 여유로운 버스가 올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속한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도 유명한 이 문제에는 간단한 해결 방안이 알려져 있다. 뒤차가 앞차를 앞질러 가는 것을 허락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나라의 요즘 버스는 다른 방법을 쓴다. 버스 기사가 운전 중 참고하는 화면에는 같은 노선의 다른 버스 사이와의 시간 간격이 표시된다.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의 속도를 조금 조정해서 앞차와 뒤차 사이의 가운데쯤에 있도록 하기만 해도 일부 버스에 승객이 몰리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버스와 달리 앞질러 갈 수 없는 전철이라면 <전차 혼잡에 대해>에서 저자가 소개한 간단한 방법을 따라 해 보시라. 만원 전철은 일단 보내고 다음 전철을 느긋하게 기다려 보시길.
<유언비어>에서는 요즘 복잡계과학이라고 불리는 연구 분야의 관점을 엿볼 수 있어 반가웠다. 유언비어의 확산을 저자는 연소로 불이 번지는 과정에 비유한다. 불이 붙을 나무가 주변에 없다면 산불은 널리 확산하지 않고 금방 꺼진다. 저자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스스로 걸러내 주변에 퍼뜨리지 않는다면 황당한 유언비어가 널리 퍼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글에서 저자가 언급한 유언비어의 예가 바로 일본 관동 대지진 때의 “폭도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라는 것이었다. 이 유언비어로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더더욱 안타까운 사건이다. 유언비어가 사실이라고 한번 가정해 보자. 대도시의 여러 우물에 독약을 넣고자 하는 폭도의 입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떤 것일까? 엄청난 분량의 독약을 사전에 미리 확보해야 하고,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일찌감치 체계적으로 독약을 대규모로 배포해 여러 장소에서 들키지 않게 몰래 보관해야 한다. 지진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니 폭도들은 이제나저제나 하염없이 지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드디어 폭도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던 지진이 갑자기 발생한다. 미리 사전에 임무를 부여받은 많은 이들을 조직적으로 여러 우물에 파견해야 하며, 이들은 또 들키지 않고 몰래 여러 우물에 독약을 넣어야 한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의 음모가 실제로 계획되어 실행되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 생각해 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오래전 일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일부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음모론을 들으면 저자처럼 생각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단편 <유언비어>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과학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멋진 문장이 등장한다. 아래에 옮기며 이 글을 마친다.
“나는 과학적 상식이 구태여 천왕성의 거리를 암기하거나 비타민의 갖가지 종류를 파악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판단의 기준이 돼야 마땅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의 생각도 같다. 과학은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그 지식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독특하게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저자와 같이 물리학자면서 동시에 문필가인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이공계 분야의 전문가가 훌륭한 문학 작품을 남기는 것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무얼까요?
2. 전혀 무게 잡지 않는 가식 없고 진솔한 문체가 참 좋았어요. 책의 이런 문장이 저자가 물리학자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3. 물리학자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느껴진 부분을 소개해 주세요.
4. 과학자면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고, 좋아하지는 않아도 반감을 갖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부 예술가는 과학에 강한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 같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5. 과학에서의 상상력은 어떤 것인가요? 과학이 아닌 분야의 상상력과 비교해 보세요.
6. “과학의 법칙이란 자연의 기억이 쓴 비망록”, “무서운 것이 많은 사람이 행복”, “최고의 천재는 가장 부채가 많은 사람”, “과학은 천왕성의 거리를 암기하거나 비타민의 갖가지 종류를 파악하는 것 이상”, “하나의 예술품은 어떤 언어로 표현한 일종의 사실”, “모든 과학자는 미숙한 실재론자”처럼 멋진 문장이 많습니다. 저자의 멋진 문장을 더 소개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