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현재의 직위에 오른 정의선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는 지난달 29일 <현대자동차그룹이 어떻게 세계 3위 자동차 생산업체가 되었는가>(How Hyundai Group become automaker in the world by volume)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1980년 말과 1990년대 미국에서 형편없는 품질의 저가 차량으로 조롱받던 현대차그룹이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상표로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지난해 판매량 3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이다. 아직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테슬라가 압도적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이 두 번째 강자라고 CNBC는 보도했다.
세간 평가에서 현대차그룹의 최근 경영 실적은 단순히 놀라움을 넘어선다.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현대차그룹에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가장 비중이 큰 시장인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으로 경쟁력에 타격을 입었다. 정부가 한·미 동맹은 한층 굳건해졌다고 홍보하지만, 현대자동차는 경쟁업체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한미 동맹이 강화되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 시장에서도 철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1조원이 넘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얻은 성적이기에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경영 실적은 빛난다. 품질 개선에 의한 제품 믹스 수익성 제고, 물량 증가와 환율 등 영향으로 매출액은 1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54% 폭증했다.
무엇보다 넘을 수 없는 벽일 것 같은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을 역전한 점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테슬라는 2019년까지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생산 및 인도 일정이 호언장담에 그칠 거라는 시장의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교롭게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이후 순조로운 차량 인도와 매출로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은 급성장했으나, 지난해 들어 수요 감소와 할인 매출 등으로 판매 마진이 급격히 악화했다. 이에 반하여 현대차그룹은 2020년 이후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개선했고, 매출원가는 점차 낮아졌다. 일단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률 역전은 테슬라의 영업 악화에 더 큰 비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나, 재무비율의 추세적 상승을 가져온 현대차그룹의 역량 개선은 당연히 주목받아야 한다. CNBC도 일시적이 아닌 이러한 근본적 변화를 인지했기에 보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가치를 과거처럼 기술과 경영 기술만으로 평가하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기술과 경영 기술이 기업의 수익(결국 배당) 크기를 결정한다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ety)에 대한 책임과 지배구조(Governance)의 건전성은 수익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요소 가운데 투자자는 지배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기업의 시장가치로 반영한다. 정의선이 지배한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정한 현대차그룹도 이러한 지배구조 문제에 안전하지 않다고 언론과 시장전문가는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문제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출발한다. 공정위가 지난해 공시 대상 기업집단 서열 3위로 지정한 현대차그룹은 자산총액 270조원으로 계열회사가 60여개에 이른다. 그룹에 다수 기업이 존재하는 데다 특히 순환출자 구조이므로 복잡한 지분 관계로 얽혀있는데, 핵심 순환출자 구조만 정리한 것이 자료 3이다. 한마디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로 출발해서 현대자동차, 기아를 거쳐 다시 현대모비스로 순환하는 소유 지분 구조를 가진다.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 정몽구 전 회장 지분(7.24%)의 지지를 기반으로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로 인정받아 그룹 전반을 지배하는 총수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의선은 2020년 10월 그룹 회장으로 올랐으며,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과 기아의 사내이사를 동시에 차지했다. 정 회장이 단 0.32%의 지분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매우 기형적 지배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행동주의 펀드의 잦은 공격 대상이 되고는 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지분 구조는 정 회장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독점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는 12개 상장사가 모두 같은 독점 구조였다. 정 회장이 추진하는 혁신적 기술을 구현한 현대차그룹의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그룹 측 주장도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대표이사를 견제할 집단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하는 독재적 경영 형태가 기술혁신에 최적인지는 의문이다.
지배구조의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본 원인인 정 회장의 지분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 주말 기준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 지분 가치는 약 4조원을 넘는다. 정 회장이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실질 지배자로 행세하려면 정몽구 전 회장과 기아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약 5조8000억원이 필요하다. 두 지분 모두 인수에 성공하면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25.1%를 소유하며 명실상부한 총수가 될 것이다. 물론 정몽구 전 회장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인수 비용은 줄지만, 복잡한 상속 분쟁과 지분 분할이 발생한다. 그러나 본인의 계열사 지분 처분으로 동원할 수 있는 약 1조7000억원으로는 정몽구 전 회장 지분을 인수하는데도 빠듯하다. 나머지 4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정 회장의 당면 숙제다. 정의선 회장의 오늘이 있도록 한 기반은 현대글로비스였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자본금 12억5300만원의 회사가 현재 시가총액이 7조원이 넘으니, 초기 60% 지분을 가졌던 정 회장에게 현대글로비스가 하나만 더 있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엔지니어링, 서림개발 등을 현대글로비스처럼 가치를 높이고 상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소프트뱅크와 현대차그룹이 공동 지분을 소유한 미국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도 정 회장에게 지분 인수 자금을 공급할 재원 역할을 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60%(정의선 회장은 사재로 20%)를 소유했는데, 계약 후 4년 이내 상장하기로 2020년 소프트뱅크와 계약했으며, 상장하지 못하면 소프트뱅크 지분 20%도 인수해야 한다. 2024년이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에게 중요한 해가 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체질을 개선하겠다며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돌발 변수로 등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의 자율적인 주가 부양 노력을 강조하고 특별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을 최근 발표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자본비용, 자본수익성,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과정에 이사회의 독립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이사회를 독점하는 형태의 현대차그룹 경영 구조의 적절성이 문제로 등장할 개연성이 높다. 아울러 당국은 과거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가 경영승계에 활용하던 계열사 물적분할이나 인적 분할 시 신주배정 및 자사주 교환 등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금지하겠다고 공시했는데, 이로 인해 정 회장은 다른 기업집단이 활용하던 승계자금 생성 수단을 더 이상 활용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밸류업’에 부진한 기업의 상장 폐지까지도 검토한다고 밝혀 기업 저평가 유지를 통한 승계 촉진이 어려워졌다. 정 회장이 인수할 실질 지주회사 현대모비스의 주가-자산가치 비율(PBR)은 지난 주말 현재 0.57배로 PBR이 1배로 상승할 때 현대모비스 주가는 75% 상승해야 하며 결국 인수 필요 자금도 급격하게 증가한다. 반대로 상장 폐지할 때는 비상장 주식 상속 평가 기준이 순자산가치 40%와 수익가치(순익 10배) 60%를 반영하므로 정몽구 전 회장 지분의 상속(또는 증여)세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어서 금융당국의 행보에 따라 가뜩이나 자금 동원에 골머리 아픈 정 회장을 더욱 어려운 궁지로 몰아넣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정 회장은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 골치가 아팠는지 지배구조 개선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는데, 이제 그렇게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사법 리스크도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최근 현대오토에버는 유력 검찰 출신인 이선욱 변호사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고 정기주주총회 안건에 공고했다. 이선욱 신임 이사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특히 KT와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각각의 친인척 회사를 상호 보은 차원에서 고가로 매입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루어지는 검찰 인사 영입이어서, 현대자동차의 사법 리스크가 목전에 다가왔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보인다. 참고로 KT가 고가에 매입한 혐의를 받는 회사는 정의선 회장 동서가 세운 회사여서, 자칫 그룹 총수로까지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지 관심사다.
현대차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 여부는 2024년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흔히들 새옹지마는 집 나간 말 한 마리가 한 쌍이 되어 돌아오고 그 말을 자식이 타다가 발을 다쳤지만, 전쟁에 군 징집이 면제되는 복과 화가 교차하는 인생 역정을 묘사한다. 지난해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재벌 3세 중 발군의 경영 능력을 선보인 정의선 회장이 2024년 첩첩한 지배구조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다시 한번 화를 복으로 바꿀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