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들통’ 국제약품·삼일제약, ‘사지(四知)’의 교훈 알았더라면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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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들통’ 국제약품·삼일제약, ‘사지(四知)’의 교훈 알았더라면 [마포나루]
  • 최석영 탐사기획에디터
  • 승인 2024.06.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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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약품, 전국 병·의원 17.6억 리베이트로 공정위 철퇴 이후 또 적발
삼일제약은 오너 3세 체제 맞아 한창 성장 탄력받다 다시 위기에 직면
/그래픽=뉴스웰, 사진=이미지투데이
/그래픽=뉴스웰, 사진=이미지투데이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아는데 어찌해서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가”(天知神知, 我知子知. 何謂無知). 중국 한나라 시대 양진(楊震)이라는 문인의 명언입니다. 그가 동래지방 태수로 부임했을 때, 왕밀(王密)이라는 자가 청탁을 위해 황금 열냥의 거금을 뇌물로 가져왔습니다. 한밤중에 양진과 단둘이 만난 왕밀은 “한밤중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며 뇌물을 받을 것을 권했고, 양진은 이를 거절하며 꾸짖은 말이라고 전해집니다. 하늘과 신, 너와 나 벌써 넷이 알고 있으니 어느 때고 반드시 들통이 나게 된다는 뜻이니, 뇌물 수수를 경계할 때 ‘사지(四知)의 교훈’만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약사와 의료인이 주고받는 ‘불법 리베이트’가 또 들통이 났다고 합니다.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며 그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제약사 리베이트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적합한 의약품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제품을 선택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당연히 국민 건강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리베이트는 약값 인상으로도 이어지고, 결국 국민과 국민건강보험에 전가됩니다. 이 같은 폐해에 정부 당국은 2010년 리베이트 제공자에 더해 수혜자인 의료인까지 처벌한다는 취지의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하고 규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규제 강화는 곧바로 리베이트 근절로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편법과 우회 수단이 생겨났죠.

실제 적발 사례를 보면, 학술대회·기부금·제품설명회 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경제적 이익을 우회 제공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으로 무작위를 가장한 경품행사를 진행해 의료인에게 고급 외제 승용차 등 경품을 제공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의료인이 자녀 명의로 설립한 법인을 의약품 거래 과정에 끼워 넣어 통행세를 거두도록 하는 지능형 범죄도 눈에 띕니다. 리베이트 액수도 고액화하고 있는데, 지난해 10월엔 70억원대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된 JW중외제약에 30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습니다. 리베이트 사건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입니다. 또 같은 해 안국약품, 2022년에는 경동제약이 불법 리베이트로 과징금 철퇴를 맞았습니다.

올해 들어 최근엔 국제약품과 삼일제약이 ‘안과용제 리베이트’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해당 품목에 대한 판매업무정지 행정 처분을 받았습니다.

국제약품은 2015년 11월쯤부터 2019년까지 의료기관에 채택·처방유도·거래유지 등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1310만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사실로 적발됐습니다. 이후 국제약품은 국제인증기관인 한국표준협회(KSA)로부터 부패방지경영시스템 국제 표준 ‘ISO37001’ 인증을 받았는데, 이번 리베이트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동안 쌓아온 윤리경영 명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린 꼴이 됐습니다. 앞서 국제약품은 2008년 2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전국 73개 병·의원 관계자에게 모두 17억6000만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건네, 2021년 공정위 철퇴를 맞은 바 있습니다.

삼일제약은 2017년 9월쯤부터 2018년 12월까지 의료기관에 330만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사실이 들켜 6개 품목에 대해 판매업무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삼일제약은 2007년과 2013년 대규모 리베이트 적발로 파문을 일으킨 전력이 있어 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된 모습입니다.

이에 따라 두 제약사는 오는 11일부터 9월 10일까지 총 3개월간 적발된 품목의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이로 인한 실적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마다 여름철 휴가 때 물놀이 피서객 증가로 눈과 관련한 항균제 역할을 하는 점안액 수요가 급증하는데 두 회사는 판매정지로 성수기를 잃어 큰 폭의 매출 감소가 예상돼서입니다.

삼일제약의 경우 330만원에 불과한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스스로 성장을 발목 잡은 셈인데, 오너 3세인 허승범 회장이 출범했던 2021년 9억7000여만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이 2022년 62억원, 지난해 114억원으로 증가하며 뚜렷한 수익성 개선 흐름을 보여 왔던 터여서 안타까움이 큽니다. 

두 제약사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아무도 모르게’ 리베이트를 건넨 것인데 하늘과 신, 주고 받은 너와 나, 그리고 정부 당국은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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