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쟁탈전, ‘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하)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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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쟁탈전, ‘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하)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9.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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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안 쌓아온 동업자 관계, 끝내 결별할 수밖에 없을 때 남은 과제는 ‘이것’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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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파트너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금력을 자랑하는 초대형 사모펀드로 인정받는다. (주)영풍을 비롯한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곤경을 겪던 장씨 가문에서 절치부심한 끝에 MBK파트너스라는 약탈적인 자본과 손잡고 최씨 가문에 정면으로 맞선 만큼 커다란 파장이 예고된다. 고려아연 지분을 둘러싸고 이미 2년 전쯤부터 최씨 가문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장씨 가문이 얼마만큼 다급한 처지에 내몰렸으면 저토록 초강수를 들고 나올까 싶은 생각도 떨치기 어렵다. 증권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공개매수가 시작된 첫날부터 이미 고려아연의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을 조금 웃도는 가격에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 거래된 주가와 공개매수 가격과의 괴리가 그다지 크지 않은 까닭에 1차 공개매수 시도가 실패할 경우, 공개매수 가격을 상향하거나 최씨 가문에서도 언제든지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공개매수 신고서가 제출된 이번 달 12일을 기준으로 고려아연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두 가문 사이의 지분 경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될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두 가문 사이의 보유 지분 차이는 불과 1%포인트 미만인 데다가 두 가문이 최근까지 경쟁적으로 지분을 꾸준히 늘려온 탓에 양쪽 지분 합계만 하더라도 이미 67%를 넘어선 만큼 국민연금 보유지분을 제외하고 나면 유통 주식 수조차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장씨 가문이 경영하는 영풍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려아연과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영 성과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동업자 관계이자 계열 자회사인 고려아연이 끊임없는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금속 제련 기술을 확보하는 동안 영풍은 기술 개발에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제련소 환경오염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환경 당국으로부터 걸핏하면 조업 중단 제재를 받아왔다. 최근까지도 제련소 내에서 끊임없이 근로자가 사망하고 대표이사가 <중대재해방지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만큼 영풍을 경영해 온 장씨 가문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시장에 팽배했으며, 고려아연의 주총이 열릴 때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고려아연의 현재 경영진에 대해 찬성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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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온갖 내우외환에 시달려온 장씨 가문이 마침내 MBK파트너스라는 익히 소문난 약탈적 자본과 손잡고 75년 동안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고려아연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 모습은 매우 당혹스럽고도 낯설다. MBK파트너스가 아무리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한다손 치더라도,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가 현재의 경영진이 경영해 온 성과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나쁜 경우는 공개매수에 성공한 투기자본이 차익 실현을 위해 외국 자본에 고려아연의 지분을 매각하는 일이다. 고려아연이 그저 단순히 기업의 주가가 본질적인 가치 대비 저평가된 까닭에 사모펀드로부터 무참하게 공격을 당한다면 경영진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끈끈한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동업자와 갈등을 빚은 끝에 철천지원수지간으로 돌변해 사생결단으로 지분 쟁탈전에 빠져든 형국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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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업자 관계에서 멀어지면서 끝내 파국에 이르는 동안 양측이 벌이는 냉혹한 지분 쟁탈전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기업 본연의 경영활동을 위해 쓰여야 마땅할 자원과 에너지가 온통 동업자였던 상대방 가문 사람들을 향한 비난과 공격에 집중될수록 기업의 가치는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 MBK파트너스에서 공개매수 최소 수량을 확보한다손 치더라도 최씨 일가에 비해 지분율 차이는 여전히 6.1%포인트에 불과하다. 혹여라도 국민연금(지분율 7.57%)이 최씨 가문 쪽을 지지하고 나선다면 양가 사이의 기분 경쟁은 오리무중에 빠져들 가능성도 상존한다.

장기간의 경영 성과 비교, 최씨 가문 창업 2세들이 개발해 온 독보적인 금속 제련 기술, 젊고 유능한 창업 3세 최윤범 회장의 신사업 추진 방향 등을 두루 감안하면 장형진 고문 측이 이번 지분 경쟁에서 설사 이기더라도 그걸 적극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두 가문이 현재까지 경쟁적으로 확보한 지분율만 하더라도 무려 67%에 이르는 만큼 향후 어느 한쪽 가문이 자신들의 지분을 대거 처분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는 이상 ‘분쟁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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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동업자 관계를 맺어온 두 집안이 아름답게 ‘헤어질 결심’에 이르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인내심과 포용, 관용이 필요할까. 끝내 결별할 수밖에 없을 때 남은 과제는 오래도록 이어온 동업 관계를 원만하고도 지혜롭게 잘 마무리하는 것뿐이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트리고 굴복시키기 위해 상도를 벗어나는 비난을 퍼붓고 이전투구식으로 싸워봐야 양쪽 모두 상처만 더욱 깊어질 뿐이다. ​ 아무쪼록 이번 고려아연 지분 쟁탈전이 상대방을 파멸시키기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처절한 싸움으로 비화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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